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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시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새로운 관계 맺기
분류비마이너뉴스 글쓴이허현덕 기자 게시일2022-05-04 조회수181
책 《집으로 가는, 길》 출간 기념 탈시설토크가 지난 4월 30일 오후 4시, 이음센터 이음홀에서 열렸다. 사진 허현덕
책 《집으로 가는, 길》 출간 기념 탈시설토크가 지난 4월 30일 오후 4시, 이음센터 이음홀에서 열렸다. 사진 허현덕

- 탈시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새로운 관계 맺기 

동그랗게 놓인 의자에 한 사람씩 천천히 일어나 춤을 췄다. 박자가 정확하지도, 세련된 동작도 없었다. 어떤 이는 왈츠를 추는 것 같았고, 어떤 이는 관광버스 춤을 추는 것 같았다. 춤은 전혀 통일되지 않았고, 박자도 어쩐지 어긋나는 것 같았다. 개별적으로 추던 춤은 십여 명이 함께 어우러지는 군무가 됐다. 군무가 시작되자 관객들도 함께 어울려 춤을 추기 시작했다. 무대와 객석의 구분이 사라졌다. 

노들장애인야학 댄스팀 ‘에스쁘아’의 공연이었다. 에스쁘아는 탈시설장애인과 현재 장애인거주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들의 모임이다.  

“에스쁘아 멤버들이 지역사회에서 잘 살 수 있다는 걸 잘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하고요. 시설에 계신 분들도 에스쁘아처럼 자유롭게 춤출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그 누구도 시설에 갇혀 사는 것이 아니라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어울려 살아야 합니다.” (김유미 노들장애인야학 교사)

이들이 표현한 동그라미는 ‘낮은 사람과 높은 사람이 없이 모두 같다’는 의미를 나타낸다. 이는 탈시설운동의 궁극적인 지향점이다. 탈시설은 새로운 관계 맺음에 관한 운동,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새로운 관계 맺기’ 운동이다.

댄스팀 에스쁘아 멤버가 춤을 추고 있다. 사진 허현덕
댄스팀 에스쁘아 멤버가 춤을 추고 있다. 사진 허현덕
댄스팀 에스쁘아 멤버와 관객들이 함께 어우려져 춤을 추고 있다. 사진 허현덕
댄스팀 에스쁘아 멤버와 관객들이 함께 어우려져 춤을 추고 있다. 사진 허현덕

새로운 관계 맺기에 대한 책 《집으로 가는, 길》 출간 기념 탈시설콘서트가 지난 4월 30일 오후 4시, 이음센터 이음홀에서 열렸다. 책은 지난 2021년 4월 30일 설립 36년 만에 문을 닫은, 사회복지법인 프리웰 산하 김포 ‘향유의집’ 시설폐지의 험난한 연대의 기록을 담고 있다.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은 시설폐지 1년을 맞아 책 발간을 기념한 탈시설토크를 열었다. 이날 행사에는 120여 명이 참여했다.

- 향유의집 시설폐지, 탈시설을 사회구조적 문제로 확장

향유의집 폐지는 탈시설의 역사에서 중요하다. 저자 중 한 명인 홍은전 작가는 “향유의집 시설폐지는 구조적인 사회적 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 탈시설”이라는 점을 널리 알리고 싶다고 설명했다. 그런 점에서《집으로 가는, 길》은 지금까지의 탈시설 관련 책들과도 차별된다고 설명했다. 

“기존에 나왔던 탈시설에 관한 책들은 당사자가 시설 밖으로 나와서 척박한 현실에서 투쟁을 통해, 그리고 외부의 용감한 활동가들과의 결합을 통한 소수의 탈시설에 관한 이야기였어요. (향유의집 탈시설은) 구조적인 어떤 사회적 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 집단적인 탈시설이고 시설이 자발적으로 결의해서 이뤄진 것이에요. 개인의 용기, 헌신, 결단, 이런 것으로 이루어진 게 아니에요. 대중들에게 (개인적인) 그런 이야기로써 소개되는 것도 좋지만 사회적인 투쟁, 사회적인 변화 속에서 (탈시설이) 이루어졌다는 것을 많이 알리고 싶어요.

사실 탈시설은 당사자분들의 목소리가 가장 중요하잖아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원칙을 깨고 (책에) 활동가와 이사장, 직원들의 이야기를 먼저 배치한 것은 이런 사회적 변화, 관계가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 같아서였어요. 저는 정말 혁명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거든요.”

책 《집으로 가는, 길》이 꽃과 함께 책상에 놓여 있다. 그 뒤로는 강민정 사무국장, 김정하 활동가가 보인다. 이날은 책의 주인공과 저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마련됐다. 사진 허현덕 
책 《집으로 가는, 길》이 꽃과 함께 책상에 놓여 있다. 그 뒤로는 강민정 사무국장, 김정하 활동가가 보인다. 이날은 책의 주인공과 저자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도 마련됐다. 사진 허현덕 

그런 점에서 홍 작가는 김정하 활동가가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의 이사장이 된 후 이사회에서 시설폐지를 선언한 부분을 가장 인상적인 부분으로 꼽았다.

“시설 최고 의사기구에서 ‘우리는 시설문을 닫는다’라는 결정을 내린 거예요. (그런 결정을 할 때) 저라면 굉장히 두려웠을 것 같아요. 아니나 다를까 그때부터 반대 세력의 맹공이 시작되었어요. 고소·고발의 집중포화를 받으면서도, 시설폐지 선언 후 이를 실행한 것은 정말 역사에 남을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지를 보세요” 

실제로 향유의집 임직원은 시설폐지 결의 후 시설장애인 부모와 직원으로부터 집중적인 고소·고발을 당했다. 이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그럼에도 김정하 활동가가 이사장으로서 시설폐지 과업을 힘있게 밀고 나갈 수 있었던 것은 시설 밖으로 나온 장애인들의 삶이 달라지는 것을 직접 목격했기 때문이다. 또한 인권활동가로서 시설에서의 삶을 외면한다는 엄청난 부채감 탓이라고 말했다.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가 웃으며 발언하고 있다. 그는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의 이사장이기도 하다. 사진 허현덕
김정하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 활동가가 웃으며 발언하고 있다. 그는 사회복지법인 프리웰의 이사장이기도 하다. 사진 허현덕

“탈시설 지원을 하는 분들마다 다 느끼는 공통점일 거예요. 그분들의 삶이 어떻게 달라지고 있는가를 목격했을 때, 지역사회에 나와서 당당하게 변해가는 모습을 볼 때, 진짜 멋지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에스쁘아의 공연 보셨죠? 그분들은 처음에 리듬을 타지 않았어요. 의자에서 일어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지역사회에 살면서 음악을 듣고 리듬을 타고, 춤을 추고 자신을 표현합니다. 그런 삶의 변화가 가장 감동적이에요.  

시설조사를 많이 나갔는데요. 시설에서 복도에 혹은 방에 휠체어도 타지 않고 그냥 앉아 있는 분들의 모습을 많이 봤어요. 그분들이 처한 상황과 표정들이 떠오를 때마다 인권활동가로서 마음의 부채감을 떨치기 힘들었어요. (시설 안에서의 생활을) 이미 알고 있으니 외면할 수 없는 마음이 있어요. 저에게 횡령도 했다고 하고 인권침해도 했다고 하고 온갖 루머에 시달리고 있는데, 그런 일들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요. 다만 그런 루머로 뺏기는 시간이 아까울 뿐이에요.”

강민정 사무국장(현 해맑은마음터 사무국장)은 향유의집 시설폐지 결의에 동참했고, 마지막까지 시설을 정리했다. 그조차 처음에는 탈시설을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그러다 탈시설한 사람들의 변화된 모습을 보며, 차츰 마음이 동화되었다. 

“탈시설이라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참 마음이 아팠어요. 내가 열심히 일하는 시설이 감옥이라는 건가? 라는 생각이 들고, 그동안 했던 일을 폄하 당하는 것 같아서 언짢았어요. 그런데 이용인의 입장과 권리의 관점에서 봤을 때는 (탈시설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시설폐지 전 이용인들의 자립생활 지원을 하면서 이분들의 인생에 너무 깊숙이 관여한다는 생각에 불안하기도 했어요. 하지만 탈시설 후 변화된 모습과 적극적으로 욕구를 표현하는 것을 보니, 어떤 마음으로 이분들을 지원해야 할지 이제는 알겠어요.”

마로니에 8인 중 한 명인 한규선 씨도 참석했다. 그 옆으로 저자 중 한 명인 홍은전 작가가 있다. 사진 허현덕
마로니에 8인 중 한 명인 한규선 씨도 참석했다. 그 옆으로 저자 중 한 명인 홍은전 작가가 있다. 사진 허현덕

- “발달장애인도 지역사회에서 함께 살자”  

향유의집이 그 스스로 문을 닫은 것에는 ‘마로니에 8인’의 활약이 있었다. 2009년 석암베데스다요양원(향유의집의 옛 이름)에 살던 장애인 8명이 지역사회에서 살 권리를 요구하며 종로구 마로니에 공원에서 노숙 투쟁을 했다. 이것이 탈시설 제도의 초석이 됐다. 마로니에 8인 중 한 명인 한규선 씨는 발달장애인이라고 탈시설할 수 없다는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향유의집이 시설폐지 된다고 했을 때 너무 기뻤어요. 그러나 아직 우리 사회는 장애인들이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지 않고,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성숙하지 못한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지난 1일 전국장애인거주시설이용자부모회와) 말도 안 되는 간담회를 하는 것을 보면서 울화통이 터졌습니다. 그때 간담회에 나온, 장애인자녀를 둔 아버지 박 아무개 씨를 저도 잘 압니다. 박 씨는 충분히 탈시설이 가능한데도 아버지의 반대로 지금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어요. 발달장애인이라고 해서 시설에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버렸으면 해요. 오늘 콘서트 영상을 이준석 대표가 꼭 봤으면 좋겠습니다.”

2년 전 그룹홈에서 탈시설한 박경인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준비위원장도 발달장애인이다. 시설에 있는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최근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활동을 하고 있다. 

“제가 잘살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행복하게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시설이 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다른 시설도 이곳저곳 가봤는데, 좋은 시설이 없다는 말에 동의합니다. 탈시설한 장애인들이 탈시설을 위해 더 투쟁해야 합니다. 장애인들이 힘을 모아 탈시설지원법을 제정하고 시설 없는 세상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이날 행사에는 120여 명이 참여했다. 참석자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탈시설로 대전환'이라는 글씨가 눈에 띈다. 사진 허현덕
이날 행사에는 120여 명이 참여했다. 참석자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탈시설로 대전환'이라는 글씨가 눈에 띈다. 사진 허현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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