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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결의문] 한 가닥 한 가닥 잘리는 머리만큼 우리의 권리는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 / 박길연
분류비마이너뉴스 글쓴이비마이너 게시일2022-05-09 조회수100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이 3월 30일부터 5월 4일까지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에 대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답변을 촉구하며 매일 아침 8시, 3호선 경복궁역 7-1 승강장(안국역 방향)에서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5월 6일부터는 장소를 바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에 대한 기획재정부 답변을 촉구하며 삭발 투쟁을 이어갑니다. 장소는 윤석열 정부가 집무실로 사용할 예정인 용산에서 가까운 지하철역 4호선 삼각지역 1-1 승강장(숙대입구역 방향)입니다. 비마이너는 삭발 투쟁을 하는 장애인 활동가들의 투쟁결의문을 싣습니다.

삭발 전, 박길연 민들레장애인야학 교장이 발언하고 있다. 검은색 단발머리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사진 이슬하
삭발 전, 박길연 민들레장애인야학 교장이 발언하고 있다. 검은색 단발머리는 그의 트레이드마크다. 사진 이슬하

올해로 내 나이 59살. 1990년, 류마티스 관절염이란 질병이 갑자기 나를 찾아왔다. 태어나 처음으로 겪는 통증과 움직일 수 없는 불편함이 한꺼번에 찾아오면서 견디기 힘들어 극단적인 생각도 했다.

하지만 혼자가 아니라는 걸 깨닫는 순간이 있었다. 1990년생 아들이 그 순간을 만들었다. 커다란 눈방울 가진 아이는 눈빛으로 엄마의 사랑을 원했고 어미인 나는 느낄 수 있었다.

와상장애인으로 살던 나는 조금씩 움직일 수 있는 몸이 됐지만, 움직임의 한계를 느끼고부터는 세상 사람들의 시선이 두려웠다. 16년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집안에서만 생활하는 동안 바깥세상이 그립고 또 그리웠다.

하지만 나는 세상과 맞설 용기가 없었다. 무엇보다 아들이 불편한 몸을 가진 엄마로 인해 놀림을 받을까 봐 두려워 감히 용기를 낼 수 없었다.

박길연 교장이 삭발식에 돌입하고 있다.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다. 박 교장은 삭발식 내내 눈물을 보였다. 사진 이슬하
박길연 교장이 삭발식에 돌입하고 있다. 그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다. 박 교장은 삭발식 내내 눈물을 보였다. 사진 이슬하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장애인신문을 통해 장애인자립생활센터를 알게 되면서 용기 내어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내딛기 시작했다.

2006년 노모와 함께 살던 중증장애인이 지하철에 목숨을 던지는 안타까운 비보를 듣게 된다. 그 이름은 고 박기연 열사. 나의 이름과 비슷한 고 박기연 열사는 이동권투쟁, 교육권투쟁, 활동지원서비스 제도화투쟁에서 열심히 활동했던 활동가였다.

나의 활동은 여기서부터다.

삭발을 하고 있는 박길연 교장 옆, 멍하니 눈물만 흘리는 배재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의원이 보인다. 사진 이슬하
삭발을 하고 있는 박길연 교장 옆, 멍하니 눈물만 흘리는 배재현 서울장애인차별철폐연대 대의원이 보인다. 사진 이슬하

왜 투쟁할 수밖에 없는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이해를 못 하는 것 같아 사례로 설명하려 한다.

첫째, 장애인평생교육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 세상에 나와 처음으로 알게 된 6명의 장애인, 그중 이미 고인이 된 분과 부평에서 만날 것을 약속하고 기다리던 중, 시간이 지나도 약속장소에 오지 않아 전화를 계속했지만 곧 도착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나는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어 그곳으로 찾아갈 테니 간판 이름을 불러달라고 했는데도 계속 곧 도착한다는 말만 반복했다. 오랜 시간을 기다린 나는 짜증 섞인 목소리로 변했다. 알고 봤더니 그는 한글을 읽고 쓰는 게 어려운 사람이었다. 이렇듯 장애라는 이유로 기본적인 교육을 받지 못해 일상생활에서 몸의 불편함과 함께 이중 차별을 겪고 있다는 것.

둘째, 탈시설지원법 제정이 필요한 이유. 활동을 하면서 가장 후회되는 일이 하나 있다. 시설에서 먼저 나온 사람에게 같이 시설에 있던 분이 자기도 나가고 싶다고 간절히 부탁을 했는데, 그 부탁을 들어주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더 이상 시설에서 살고 싶지 않다며 자살을 했다는 비보를 전해 들었다. 15년이란 세월이 흘러도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그분에게 죄송한 생각뿐이다. 서비스가 필요한 사람에게 자유를 뺏는 정책은 누구를 위한 것이란 말인가?

셋째, 이동권이 보장돼야 하는 이유. 지금 인천에 사는 나는 남해가 고향이다. 전동휠체어를 사용하는 나는 특장차로만 이동이 가능한 지체장애인이다. 인천에서 지하철로 서울역까지 이동, 서울역에서 KTX를 타고 전남 순천에 도착. 내 고향은 남해인데, 순천에서 남해까지 교통편이 보장될 때까지 기다리라고 한다. 올해로 86세인 어머니가 너무나 보고 싶지만, 엄마를 보러 가는 교통편이 없어 보러 갈 수가 없다.

박길연 교장이 삭발을 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박길연 교장이 삭발을 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박길연 교장과 문상민 민들레장애인야학 사무국장이 나란히 앉아 삭발을 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박길연 교장과 문상민 민들레장애인야학 사무국장이 나란히 앉아 삭발을 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가? 장애인도 어디든 다닐 수 있고, 교육을 받을 수 있고, 내가 선택한 삶을 살 수 있을 때까지!

27년간 비장애인으로 살았고, 16년은 세상과 단절된 삶을 살았고, 16년동안 몸이 부서져라 기고, 23일을 단식하고 이제는 삭발을 한다.

나는 오늘 삭발을 하면서 결심한다. 한 가닥 한 가닥 잘리는 머리만큼 나의 마음도 찢어진다. 찢어진 만큼 우리의 권리는 반드시 보장돼야 한다. 그때까지 투쟁할 것이다!

박길연 교장이 머리를 거의 다 밀었다. 그의 얼굴이 잘린 머리카락들로 덮여 있다. 사진 이슬하
박길연 교장이 머리를 거의 다 밀었다. 그의 얼굴이 잘린 머리카락들로 덮여 있다. 사진 이슬하
혜화역으로 이동하는 지하철 안에서 박길연 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혜화역으로 이동하는 지하철 안에서 박길연 교장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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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마이너뉴스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33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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