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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결의문] 시설에서의 15년, 그때는 행복을 몰랐습니다 / 추경진
분류비마이너뉴스 글쓴이비마이너 게시일2022-05-17 조회수134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이 3월 30일부터 5월 4일까지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에 대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답변을 촉구하며 매일 아침 8시, 3호선 경복궁역 7-1 승강장(안국역 방향)에서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5월 6일부터는 장소를 바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에 대한 기획재정부 답변을 촉구하며 삭발 투쟁을 이어갑니다. 장소는 윤석열 정부의 집무실이 있는 용산에서 가까운 지하철역 4호선 삼각지역 1-1 승강장(숙대입구역 방향)입니다. 

5월 17일 33차 삭발 투쟁은 광주 금남로에서 열렸습니다. 비마이너는 삭발 투쟁을 하는 장애인 활동가들의 투쟁결의문을 싣습니다.

추경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삭발식 전 발언하고 있다. 뒤로는 '5.18 최후항쟁지! 옛 전남도청'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사진 이슬하 
추경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삭발식 전 발언하고 있다. 뒤로는 '5.18 최후항쟁지! 옛 전남도청'이라는 글자가 보인다. 사진 이슬하 

나는 시설에서 15년을 살았습니다. 

그때는 행복을 몰랐습니다. 주면 주는 대로 먹고 입으라면 입었습니다. 그렇게 오래 살다 보니 하고 싶은 것도 없고 변변한 꿈도 없이 그냥 죽은 날만 기다리는 삶을 15년 살아왔습니다. 

그러다 탈시설한 동생 친구를 보면서 ‘나도 나가서 살 수 있겠구나’라고 꿈을 꿀 수 있었습니다. 탈시설한 지 7년째, 내 평생 지금처럼 잘살고 있는 날도 없었습니다. 

투쟁하면서 생각도 많이 변했습니다. 중증장애인은 ‘일하지 못할 것이다’에서, 이제는 ‘중증장애인도 일할 수 있다’로 바뀌었습니다. 이것은 큰 변화입니다. 

시설에 살면서 무기력에 빠졌던 내가, 이제는 남들에게 꿈을 줄 수도 있고 희망을 줄 수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투쟁하면서 나에게 힘이 되는 동료도 많이 생겼습니다. 거기서 행복도 생기고, 사는 재미도 생겼습니다. 가끔 피곤도 하지만 이 삶이 좋습니다. 

다시는 시설로 돌아가기 싫습니다. 꾸준하게 투쟁하는 게 제 목표이기도 합니다. 몸이 허락하는 날까지 함께 투쟁하겠습니다.

추경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의 머리카락이 잘리는 순간. 추 활동가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다. 사진 이슬하
추경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의 머리카락이 잘리는 순간. 추 활동가의 눈에 눈물이 맺혀 있다. 사진 이슬하
추경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삭발하는 동안, 다른 활동가가 손을 들어 투쟁결의를 외치고 있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다. 사진 이슬하
추경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삭발하는 동안, 다른 활동가가 손을 들어 투쟁결의를 외치고 있다. 그의 눈에는 여전히 눈물이 맺혀 있다. 사진 이슬하
추경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의 머리가 모두 잘려나갔다. 그의 얼굴에 굳은 결의가 보인다. 사진 이슬하
추경진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의 머리가 모두 잘려나갔다. 그의 얼굴에 굳은 결의가 보인다. 사진 이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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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마이너뉴스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3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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