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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위·법원 결정도 무시한 선관위, 장애인 참정권 위기
분류비마이너뉴스 글쓴이이슬하 기자 게시일2022-05-28 조회수246
발달장애인 당사자인 서울피플퍼스트 활동가 김동호 씨와 김현아 씨가 가오나시 분장을 한 채 기자회견에 참가하고 있다. 가오나시 분장은 발달장애인이 선거에서 유령 취급 받아왔음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다. 사진 이슬하
발달장애인 당사자인 서울피플퍼스트 활동가 김동호 씨와 김현아 씨가 가오나시 분장을 한 채 기자회견에 참가하고 있다. 가오나시 분장은 발달장애인이 선거에서 유령 취급 받아왔음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다. 사진 이슬하

제8회 전국동시지방선거 사전투표 첫날인 27일 오전 10시 용산 대통령실 청사 맞은편 전쟁기념관 앞에서 발달장애인을 포함한 모든 장애인의 참정권 보장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장애인의 참정권 침해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대선 역시 장애인 참정권 침해 사례가 속출했다.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아래 장추련) 등 장애계는 지난 5월 63건의 차별 사례를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에 진정하기도 했다.

장애계는 대선 이후 두 번이나 경기도 과천시 중앙선거관리위원회(아래 중앙선관위)를 찾아가 이번 6·1 지방선거에서 장애인 참정권 보장 방안을 마련할 것을 요구해왔다. 그러나 중앙선관위는 대책을 내놓기는커녕, 발달장애인 투표보조를 가로막는 매뉴얼을 내놨다.

피플퍼스트광진센터 활동가가 “발달장애인 투표할 권리 보장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슬하
피플퍼스트광진센터 활동가가 “발달장애인 투표할 권리 보장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슬하

- 고질적인 투표소·선거 정보 접근성 문제

휠체어 이용 장애인의 투표소 접근성은 고질적인 문제다. 공직선거관리규칙은 투표소를 1층 또는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에 설치하도록 한다. 다만 ‘원활한 투표관리를 위하여 적절한 장소가 없는 경우’를 예외로 두고 있다. 1층에 놓인 임시기표소를 이용하도록 하고 제대로 된 지원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박김영희 장추련 상임대표는 “지난 대선 때 코로나19 확진자들이 1층 임시기표소에서 기표한 투표용지를 투표함에 직접 넣을 수 없다는 것이 논란이 됐다. 이 일로 중앙선관위원장이 바뀌기까지 했다”면서 “지체장애인은 그동안 투표용지가 투표함에 제대로 투입되는지 확인할 수 없었던 적이 많다“라고 지적했다.

박김영희 장추련 상임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박김영희 장추련 상임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시각장애인의 선거 정보 접근성 역시 문제다. 점자 선거공보물은 묵자로 제작된 것에 비해 내용이 누락된 경우가 많다. USB로 정보가 제공되기도 하지만, UBS 제출은 의무사항이 아니다. 

이번 지방선거에서 서울 종로구는 후보자 수와 의원정수가 같아 구의회 비례대표의원 선거를 치르지 않는다. 묵자로 된 무투표 안내 용지가 선거공보물과 함께 발송됐지만, 점자나 USB으로는 제공되지 않았다.  

시각장애인 당사자이자 종로구민인 곽남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는 “원래 투표용지를 7장 받는 줄만 알았다가 6장만 받는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고 깜짝 놀랐다. 점자 안내문조차 없어 매우 당황스러웠다”고 말했다. 그는 종로구에 아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일일이 안내하고 있다고 전했다.

곽남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곽남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활동가가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이슬하

- 선관위, “장애유형 무관하다”면서 발달장애인 투표보조 불허

발달장애인이 투표보조를 받을 수 없는 것도 문제다. 중앙선관위는 2020년 4월 시행된 21대 국회의원선거부터 투표보조 대상에서 발달장애인을 뺐다. 지난해 3월 국가인권위원회(아래 인권위)가 차별시정 권고조치를 내리고, 지난 2월 법원이 강제조정을 통해 3·9 대선부터 발달장애인 투표보조를 재개하라고 지시했지만, 지난 대선에서도 발달장애인은 투표보조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

장애계의 요구에도 중앙선관위는 오히려 자세한 예시를 들며, 발달장애인의 투표보조를 어렵게 만들었다. 지난 10일 중앙선관위가 각급선관위에 보낸 ‘제8회 지선 각급위원회 안내사항’이란 제목의 문서에는 ‘투표보조 관련 사례별 대응방안’이 담겨있다. 내용을 보면, “보행 등 활동에 어려움이 없어 보이는 발달장애 선거인(또는 동행인)이 투표보조를 요청한 경우”에 “‘후보자가 누군지 몰라서’, ‘인지기능이 부족하여 보호자가 대신해주어야 해서’ 등 대리투표에 이를 수 있는 경우 투표보조 불가”라고 적혀있다.

지난 10일 중앙선관위가 각급선관위에 보낸 문서의 일부. 문서에 적힌 ‘투표보조 관련 사례별 대응방안’이 발달장애인을 차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공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지난 10일 중앙선관위가 각급선관위에 보낸 문서의 일부. 문서에 적힌 ‘투표보조 관련 사례별 대응방안’이 발달장애인을 차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제공 장애인차별금지추진연대

이수연 법조공익모임 나우 변호사는 “발달장애인도 자신이 뽑고 싶은 후보자를 선택할 수 있다. 중앙선관위는 발달장애인 선거인은 대리투표의 가능성이 있다고 단정 짓고 국민의 권리를 부정하고 있다. 이는 명백한 발달장애인 차별”이라고 비판했다.

발달장애인 당사자인 김기백 피플퍼스트성북센터 활동가는 “선거가 시험을 통과해야만 할 수 있는 것인가”라면서 “중앙선관위는 발달장애인을 완전히 무시한 내용으로 지침을 내린 것을 사과하라”고 촉구했다.

- 현장 혼선 여전… 매뉴얼 전달 못 받았다는 투표소 관리관

기자회견을 마친 참가자들은 원효로제1동 사전투표소로 이동해 투표를 진행했다. 투표보조를 희망하는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은 활동가와 짝을 이뤄 투표소에 들어갔다.

발달장애인 당사자 김동옥 씨가 투표보조인과 함께 기표소에 들어가려 하자 사전투표 관리관이 “가족이 아니면 참관인 입회하에 투표해야 한다”며 참관인을 데리러 갔다. 그러나 이미 다른 발달장애인 당사자 임성재 씨는 가족이 아닌 투표보조인과 둘이서 투표를 진행 중이었다. 기자가 이 상황에 대한 설명을 요구하자 사무원이 대신 나와 “참관인 입회 여부는 강요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고 투표자의 의사에 맡긴다”고 답했다. 그러나 투표자 김 씨는 참관인 입회를 요청한 적이 없다.

공직선거법상 투표보조인이 가족이 아닌 경우 본인이 지명한 2인을 동반해 투표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규정은 현장에 적용되지 않았다.

기표소에 들어가기 전, 임성재 씨가 투표보조인과 함께 투표용지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이슬하 
기표소에 들어가기 전, 임성재 씨가 투표보조인과 함께 투표용지를 살펴보고 있다. 사진 이슬하 
김동옥 씨가 투표보조인과 함께 기표소에 들어가 있는 상황에서 사전투표 관리관이 참관인을 입회시키고 있다. 사진 이슬하
김동옥 씨가 투표보조인과 함께 기표소에 들어가 있는 상황에서 사전투표 관리관이 참관인을 입회시키고 있다. 사진 이슬하

취재진을 동반한 상황에서 우려했던 투표보조 거부 사례는 없었다. 지난 10일 중앙선관위가 각급위원회에 보낸 문서에 대해 현장의 관리관 등은 전달받은 바 없다고 답했다. 매뉴얼이 숙지되지 못한 덕분에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은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이다.

투표소를 나온 발달장애인 유권자들은 투표보조가 만족스러웠다는 소감을 밝혔다. 김현아 씨는 “7장을 해야 하니까 복잡한데, 혼자 했으면 더 헷갈렸을 것 같다. 그래도 같이 해서 할 만했다”고 말했다. 김동호 씨는 “지난 선거 땐 혼자 해서 힘들었는데 오늘은 쉽게 했다”고 얘기했다.

김동옥 씨가 투표함에 투표용지가 담긴 봉투를 넣고 있다. 그의 옆에 투표보조인이 서 있다. 사진 이슬하
김동옥 씨가 투표함에 투표용지가 담긴 봉투를 넣고 있다. 그의 옆에 투표보조인이 서 있다. 사진 이슬하

이날 원효로제1동 사전투표소의 사무원은 “발달장애인도 모두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중앙선관위의 입장은 다르다. 중앙선관위는 27일 발달장애인 투표보조에 대한 비마이너의 질의에 “장애유형과 상관없이 혼자서 기표할 수 없어 본인이 요청하는 경우에 누구나 투표보조를 받을 수 있다”라면서도 “모든 발달장애인 대상 투표보조 허용 요구에 대해서는 공직선거법 개정이 우선 이뤄져야 한다”라고 답했다. 

결국 모든 발달장애인이 투표보조를 받을 수 없다는 의미였다. 다른 투표소에서는 얼마든지 투표보조 거부 사례가 나올 수 있다는 의미기도 하다.

한편 장추련은 이번 지방선거에서 일어나는 장애인 차별 사례를 모아 대응해나갈 방침이라고 밝혔다.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가 “발달장애인 투표보조 이행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슬하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가 “발달장애인 투표보조 이행하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이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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