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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쟁결의문] 꼭 무엇을 만들어야 노동입니까? / 박동섭
분류비마이너뉴스 글쓴이비마이너 게시일2022-05-27 조회수156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 활동가들이 3월 30일부터 5월 4일까지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에 대한 대통령직인수위원회 답변을 촉구하며 매일 아침 8시, 3호선 경복궁역 7-1 승강장(안국역 방향)에서 삭발 투쟁을 했습니다.

5월 6일부터는 장소를 바꿔 장애인권리예산 보장에 대한 기획재정부 답변을 촉구하며 삭발 투쟁을 이어갑니다. 장소는 윤석열 정부의 집무실이 있는 용산에서 가까운 지하철역 4호선 삼각지역 1-1 승강장(숙대입구역 방향)입니다. 5월 27일부터는 삼각지역 1·2번 출구 개찰구 근처에 설치된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에서 삭발 투쟁을 진행 중입니다.

삼각지역 1·2번 출구 개찰구 근처에 설치된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 영정 앞에 국화꽃 여러 송이가 놓여 있다. 사진 이슬하
삼각지역 1·2번 출구 개찰구 근처에 설치된 ‘발달·중증장애인 참사 분향소’. 영정 앞에 국화꽃 여러 송이가 놓여 있다. 사진 이슬하
분향소 앞 삭발투쟁식 현장. 활동가들이 모여 있다. 현수막에는 ‘장애인권리예산 기획재정부 답변 촉구를 위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삭발 투쟁 결의식’이라 적혀 있다. 사진 이슬하
분향소 앞 삭발투쟁식 현장. 활동가들이 모여 있다. 현수막에는 ‘장애인권리예산 기획재정부 답변 촉구를 위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삭발 투쟁 결의식’이라 적혀 있다. 사진 이슬하

안녕하세요. 저는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권익옹호팀 활동가 박동섭입니다.

저는 인천에 있는 특수학교에 다니면서 학창시절을 보냈습니다. 학교 졸업하고 스무 살이었을 때, 당시 장애를 극복하고 보람과 희망을 찾고자 모 직업재활원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월급 1만 원을 받고 단순 작업에 임했습니다. 낚시할 때 쓰는 뜰채를 만들고, 커터칼 조립도 하고, 전기 콘센트도 조립했습니다.

그러다가 시설이 3개로 나눠지면서 보호작업장과 생활시설 그리고 유료시설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보호작업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박동섭 단장이 사다리와 쇠사슬을 목에 걸었다. 사진 이슬하
박동섭 단장이 사다리와 쇠사슬을 목에 걸었다. 사진 이슬하
삭발 중인 박동섭 단장. 눈을 질끈 감았다. 사진 이슬하
삭발 중인 박동섭 단장. 눈을 질끈 감았다. 사진 이슬하

보호작업장은 그곳에서 일하는 장애인을 근로장애인과 훈련받는 장애인으로 나누어 놓았습니다. 근로장애인은 한 달을 열심히 일한 대가로 60만 원 정도 받기로 하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원장은 훈련장애인의 급여 30만 원을 근로장애인이 부담하라고 명령하여 우리 근로장애인은 제대로 된 급여를 받지 못하였습니다. 훈련장애인은 한 달 내내 훈련을 받아도 10만 원도 채 되지 않는 급여를 받고 힘들게 일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점심식사와 간식비로 한 달 8만 원을 자비로 지출했습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알았지만, 항의 한번 하지 못했습니다. 부모님들이 동의한 것이라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화가 나지만 이곳이라도 보낼 수밖에 없는 현실에 많이 속상해하셨습니다. 삶의 변화를 주고자 들어갔던 보호작업장에서 저는 아무런 권리도 찾지 못했습니다. 

삭발을 거의 마친 박동섭 단장. 사진 이슬하
삭발을 거의 마친 박동섭 단장. 사진 이슬하
삭발을 마치고 머리에 띠를 두른 박동섭 단장. 사진 이슬하
삭발을 마치고 머리에 띠를 두른 박동섭 단장. 사진 이슬하

저는 그 후 보호작업장을 나와 인천의 모 기관에서 동료상담가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기관에서는 제가 한글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업무를 주기는커녕 받아쓰기를 시키며 업무라고 하였습니다.

사무국장은 저에게 퇴근 후에 누구를 만났고, 무슨 말을 했는지 물어봤습니다. 제가 밖에서 기관에 대해 나쁜 말을 하고 다닌다며 추궁했습니다. 저는 기관에 대해 나쁜 이야기 하지 않았다고 했지만 믿지 않았습니다. 이후로도 사무국장의 괴롭힘은 계속되었습니다. 몇 개월 후 사직서를 써야 한다는 거짓말에 속아 원하지 않는 퇴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박동섭 단장이 삭발을 마치고 소감을 발언하고 있다. 뒤에 근조기가 보인다. 사진 이슬하
박동섭 단장이 삭발을 마치고 소감을 발언하고 있다. 뒤에 근조기가 보인다. 사진 이슬하
삭발을 마치 박동섭 단장(왼쪽)과 김정방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인권실천단 불나비 활동가(오른쪽). 사진 이슬하
삭발을 마치 박동섭 단장(왼쪽)과 김정방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 인권실천단 불나비 활동가(오른쪽). 사진 이슬하

지금은 민들레장애인자립생활센터에서 권익옹호활동과, 장애인운동을 적극적으로 하게 되어서 좋습니다. 이제야 장애인 노동권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장애인이 최저임금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되면 좋겠습니다. 사회에서 함께 살아가는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꼭 무엇을 만들어야 노동입니까?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만들어내는 것도 노동입니다! 우리 장애인은 권리를 만들어내는 노동을 하는 공공일자리를 보장받고 싶습니다. 권리를 생산하는 권리중심중증장애인맞춤형공공일자리가 하루빨리 인천, 아니 전국적으로 시행되어 장애인도 노동하며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동지 여러분, 투쟁합시다! 장애해방 그날까지 끝까지 투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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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자표시-변경금지(BY-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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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비마이너뉴스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3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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