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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장애인 자립절차 개선안은 시설 수용 강화 정책 / 민구
분류비마이너뉴스 글쓴이민구 게시일2024-04-24 조회수6

‘당신은 자립적인 삶을 살고 있나요?’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누구나 대답하기 곤란할 것이다. 아마 상당수 비장애들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학교에 가고, 학교를 졸업하면 취업하면서 부모로부터 독립된 삶을 살아갈 것 같다. 하지만 장애인이 경험하는 자립의 과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2020년 이루어진 장애인 거주시설 전수조사 결과를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 최종학력 중학교 졸업 이하: 55.35% (무학: 36.02%/ 초졸: 8.99%/ 중졸: 10.34%)

- 근로에 참여하고 있는 경우: 16.2% (이 중 66.89%의 장애인은 보호작업장에서 일함)

- 시설 입소자의 평균 연령: 39.4세

- 평균 입소 기간: 18.9년

교육권이나 노동권 같은 기본적인 권리를 박탈당한 채 시설에서 오랜 세월 제한된 삶을 살다 보면 소위 ‘시설 병’ 내지 ‘시설 증후군’에 걸리기 쉽다. 이는 장기간 장애인 거주시설이나 장기요양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을 가리키는 용어로, 무기력감, 자립 역량의 감소, 사회적 고립, 정신적·신체적 건강 악화와 같은 증상으로 나타난다. 이와 같은 상황에 놓인 시설 거주 장애인이 탈시설을 결심하는 것 자체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지금 시설에 남아 있는 대다수 장애인은 고령의 중증 발달장애인이다. 이들의 탈시설을 위해서는 매우 섬세한 정책적 접근이 필요한데, 서울시의 접근은 무지하고 서툴기 그지없다.

2024년 2월 27일 배포된 서울시 보도자료. 캡처 이미지
2024년 2월 27일 배포된 서울시 보도자료. 캡처 이미지

지난 2월 27일 서울시는 “‘장애인 자립절차’ 개선해 시설 퇴소 전·후 촘촘하게 지원한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하지만 서울시가 발표한 자립절차 개선안을 보면 자립을 지원하겠다는 것인지, 방해하겠다는 것인지 구분하기가 어렵다. 이 거칠고 서툰 정책의 여러 문제점들 중 몇 가지만 꼽아보도록 보자.

- 자립역량 조사는 국제협약 위반

서울시는 소위 ‘자립역량 조사’를 통해 자립지원위원회에서 거주시설 장애인의 탈시설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하지만 이는 명백한 국제협약 위반이다.

유엔장애인권리협약(UN CRPD) 제19조(자립적 생활과 지역사회에의 포함)는 장애인이 지역사회 내에서 자율적이고 독립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자신의 주거지 선택과 어디에서 누구와 살 것인지 결정할 권리”를 명시하고 있는데, 이는 장애인이 거주시설이 아닌 지역사회 내 자신이 선택한 환경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을 의미한다.

탈시설 과정을 전문가가 통제하는 것은 이러한 인권 기준에 어긋난다. 탈시설 과정은 장애인 개인의 의견과 선택을 최우선으로 존중하고, 그들이 지역사회 내에서 자립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장애인 개인의 권리와 존엄성을 중심에 두는 접근이 필요하다.

조상지 씨가 “투쟁”을 외치고 있다. 그의 옆에는 “지역사회 함께 살자”라고 적힌 피켓이 있다. 사진 하민지
조상지 씨가 “투쟁”을 외치고 있다. 그의 옆에는 “지역사회 함께 살자”라고 적힌 피켓이 있다. 사진 하민지

- 거주시설은 ‘주거 선택권’ 보장 위한 선택지가 아니다

서울시에서는 장애인의 주거 선택권을 최우선으로 한다며 ‘시설 거주’ 또한 하나의 선택지로 남겨 놓았다. 유엔에서는 어떻게 바라볼까?

유엔장애인권리협약과 2022년 발표된 탈시설가이드라인은 장애인 거주시설을 장애인의 ‘주거 선택권’으로 보지 않는다는 점을 명백히 밝히고 있다. 그 이유는 거주시설이 자율성과 독립성 제한하고, 분리와 격리의 성격을 지니며, 집단적 서비스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20년간 시설에 갇혀 살았던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회원 조상지 씨는 “좋은 시설은 없다”고 강조했다. 조 씨는 “사람은 경험 속에서 생각할 능력이 만들어지는데 시설은 생각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내가 경험하는 일들이 인간적인지, 비인간적인지 판단할 수 없게 만들며 시설 밖으로 나오면 개죽음당한다고 세뇌한다”면서 “좋은 시설과 나쁜 시설의 차이는 ‘마당에 묶어놓고 사람들이 먹다 남은 밥을 먹는 개’와 ‘집안에서 사료 먹는 개’의 차이 정도”라고 일갈했다.1)

- ‘단계적 자립’은 시대 역행적 정책

서울시는 자립역량 심사를 통해 자립지원위원회에서 ‘단계적 자립’ 판정을 받으면, 시설에서 5년의 준비 기간을 갖고 퇴소 후 체험홈 등에서 충분한 준비 과정을 거친 다음에야 비로소 지원주택 등을 통해 완전한 자립이 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다. ‘선 훈련 후 배치’의 원칙이다.

하지만 이는 발달장애인의 특성에 맞지 않는 방식임이 이미 증명됐다. 장애인 고용에서도 기존에는 선 훈련 후 배치 패러다임이 지배적이었지만, 발달장애인의 경우 예컨대 바리스타 교육을 교육장에서 받고 업체에 취업하면 기계나 장소에 다시 적응해야 하는 어려움이 나타났다. 이 때문에 배치와 지원(훈련)이 동시에 이루어지는 지원고용 모델이 등장한 것이다.

장애인 지원주택 제도 역시 주거 우선 모델(Housing First)에 근거를 두고 있다. 주거 우선 모델은 개인에게 안정적인 주거를 먼저 제공하고, 그 후에 개인의 다양한 필요에 따른 지원 서비스를 제공하는 접근 방식을 말한다. 이 모델은 주거가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겪는 여러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인 기반이라고 본다.

현재 시설에 남아 있는 장애인은 대부분 의사소통이 어려운 발달장애인이다. 이들에게는 탈시설과 자립생활이 무엇인지 알기 쉽게 설명하고 다양한 경험의 기회를 충분히 제공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 기회는 시설 안이 아닌 밖에서, 당사자가 직접 살아갈 집에서 진행되어야 한다. 주거 환경이 달라지면 아무리 자립생활을 연습한다고 해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하기 때문이다.

- 중증장애인은 시설에서 평생 살아야 한다?

장애인의 탈시설 여부를 결정하는 ‘자립역량 조사’와 ‘자립지원위원회’에 의료인 등의 전문가가 참여한다는 것은 자립역량 조사가 의료적 관점에서 진행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중증의 장애나 기저질환이 있는 사람은 본인의 탈시설 의사에도 불구하고 탈시설이 허용되지 않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중증의 장애가 있는 사람일수록 탈시설이 필요하다. 지역사회 내 전문적인 의료설비를 갖춘 병원에서 개별적인 의료서비스를 받고, 활동지원서비스와 같은 1:1 서비스를 통해 개인의 필요와 욕구에 맞춘 지원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중증장애인의 삶의 질은 향상될 수 있기 때문이다. 거주시설에서 제공하는 집단적 서비스는 중증장애인을 소외시키고 배제할 뿐이다.

- 장애인에게 기본값은 거주시설인가

서울시는 장애인이 자립 후 사회 적응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 연 1회의 자립역량 재심사 절차를 통해 필요시 시설 재입소를 가능하게 했다. 탈시설한 장애인이 사회에 적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시설에 재입소하는 것이 아니라 부적응과 어려움이 왜 나타나는지 그 이유를 확인하고,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더 많은 지원과 자원을 제공하는 것이 상식이다. 이러한 접근이 장애인의 인권을 존중하고 자립과 지역사회 통합을 촉진하는 방향이다. 보호 종료된 아동이 지역사회에 적응하지 못한다고 해서 시설에 재입소하지는 않는다. 보호 종료된 이상 어떻게든 지역사회에서 살아가는 것이 기본값(default)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장애인의 경우는 왜 다른 것일까? 장애인은 지역사회가 아닌 시설에서 살아가는 것이 서울시의 기본값이기 때문이다.

‘서울시의회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안 부결 촉구 결의대회’에 참여한 활동가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서울시의회 탈시설지원조례 폐지안 부결 촉구 결의대회’에 참여한 활동가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 김소영

- 연대의 카르텔을 형성하자

아무리 유엔에서 탈시설을 권리로 명문화하고 정부에서 탈시설 로드맵을 발표해도 오세훈 서울시장은 인권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한다. 5년마다 발표하던 ‘거주시설 탈시설화 추진계획’도 발표하지 않고 자립 절차도 어렵게 만든다. 심지어 탈시설지원조례조차 폐지하려 든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걸까? 오세훈 서울시장과 거주시설 운영자 사이에 부적절한 카르텔이 형성돼 있지 않은 이상 이렇게까지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지금까지 해 온 것처럼, 장애인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투쟁하자. 장애인을 시설에 격리한 채 굴러가는 폭력적인 비장애중심주의 사회에서는 그 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고 해방된 존재로 살아갈 수 없다. 비장애인이여 연대하라. 연대의 힘은 무엇보다 강하다. 더욱 강력한 연대의 카르텔을 형성하자.

 

1) 조상지, 「독립형 주거 서비스? 복지부나 들어가 살아라」, 『비마이너』, 2023. 7. 11.

 

* 필자 소개

민구 장애와인권발바닥행동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footact04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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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마이너뉴스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6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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