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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지체 중복 장애인은 전동휠체어 탈 수 없나요?
분류비마이너뉴스 글쓴이허현덕 기자 게시일2021-05-04 조회수296

12년 전부터 휠체어를 이용한 이희영 씨는 시각장애가 있다. 시력은 빛을 희미하게 감지할 수 있는 수준이다. 그런데 시각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전동휠체어 국가지원을 받을 수 없어, 일상에 큰 불편을 겪고 있다. 희영 씨는 집 안에서도 휠체어로 이동할 만큼 신체를 움직이는 게 쉽지 않다. 휠체어는 그의 몸의 일부와 마찬가지다.

특히 4년 전 동대문구 임대아파트로 이사 오고부터는 수동휠체어 이용 자체가 힘겨워졌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거주하는 동까지 올라가는 길이 매우 길고 가팔라서 희영 씨와 활동지원사는 외출 한 번 하면 녹초가 된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수동휠체어를 직접 밀어봤다. 10분의 1 정도의 거리를 밀었을 뿐인데 다음날까지 어깨가 뻐근했다. 그래서 희영 씨는 외출하고 집으로 돌아올 때는 집 앞까지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한다. 한 달에 8만 원을 쓰는데 정기적인 출근을 하지 않는 사람 치고는 많은 금액이다. 그러니 희영 씨는 외출 자체를 꺼리게 된다.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거주하는 동까지 올라가는 길이 매우 길고 가팔라서 희영 씨와 활동지원사는 외출 한 번 하면 녹초가 된다. 사진 이희영 씨 활동지원사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거주하는 동까지 올라가는 길이 매우 길고 가팔라서 희영 씨와 활동지원사는 외출 한 번 하면 녹초가 된다. 사진 이희영 씨 활동지원사

“10번 외출할 걸 5번 외출하게 되고, 5번 외출할 걸 아예 포기하게 돼요.” 

그의 말에 옆에 있던 활동지원사도 “희영 씨 활동지원사 그만둔다면 수동휠체어로 오르내리는 게 제일 큰 이유일 것”이라고 거들었다. 활동지원사 사이에서는 수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장애인을 기피하는 현상도 있다고 전해진다. 그만큼 고되기 때문이다.  

- 경사로 급해 위험하지만, 다른 통로도 계단에 막혀

희영 씨는 가파른 오르막길을 피하기 위한 다른 방법들을 강구했다. 이를 위해 지하주차장 통로까지 샅샅이 살폈지만 번번이 ‘계단’에 가로막혔다. 경사로 설치를 위해 SH공사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 흔쾌히 경사로를 설치해준다던 SH공사는 돌연 계획을 취소했다. “경사각이 안 나와” 공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희영 씨와 같은 아파트에 사는 ㄱ 씨는 “경사로 설치를 두고 아파트 내에서 가부 표결이 이뤄지기도 했지만, 흐지부지됐다”고 말했다. ㄱ 씨는 아파트 단지에서 휠체어를 이용하는 6명 중 한 명이다. 그러나 ㄱ 씨는 전동휠체어를 이용하고 있어서, 희영 씨만큼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힘겹지는 않다고 말했다. 이 아파트에서 수동휠체어 이용자는 희영 씨뿐이다.

아파트 초입부터 가파른 경사가 있다. 희영 씨가 외출할 때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는 이유도 경사 때문이다. 사진 허현덕
아파트 초입부터 가파른 경사가 있다. 희영 씨가 외출할 때 장애인콜택시를 이용하는 이유도 경사 때문이다. 사진 허현덕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거주하는 동까지 올라가는 길이 매우 길고 가팔라서 희영 씨와 활동지원사는 외출 한 번 하면 녹초가 된다. 사진 허현덕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거주하는 동까지 올라가는 길이 매우 길고 가팔라서 희영 씨와 활동지원사는 외출 한 번 하면 녹초가 된다. 사진 허현덕

- 중복장애라는 이유로 전동휠체어 지원 원천 차단?

결국 전동휠체어로 교체하는 방법밖에는 없다. 그런데 전동휠체어는 희영 씨와 같은 지체·시각 중복장애가 있다면 지원받기 힘들다. 

전동휠체어는 국민건강보험공단(아래 건보공단)에서 건강보험급여를 통해 최대 209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이때 의사의 휠체어 처방전이 필수인데, 희영 씨의 경우 서울대학교 병원에서 ‘시각장애가 있기에 (전동휠체어) 처방전을 줄 수 없다’는 답을 받았다. 처방전을 받을 수 없으니 전동휠체어를 사려면 온전히 자신의 돈을 들여야 한다. 전동휠체어 가격은 200만 원가량부터 소형차 한 대와 맞먹을 정도까지 천차만별이다. 

희영 씨는 “쓸 만한 전동휠체어는 고가다. 지체장애인이 받는 지원을 시각장애가 있다고 해서 지원받을 수 없다는 게 이해되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중복장애인이 보조기기 지원에서 배제되는 것은 희영 씨만의 문제는 아니다. 지체장애와 발달장애가 있는 중복장애인도 전동휠체어 국가 지원을 받기 힘들다. 병원에서 진행하는 인지검사를 통과해야 처방전이 나오기 때문이다. 한 지체·발달 중복장애인은 암산이 안 된다는 이유로 국가지원을 받지 못해 전동휠체어를 자부담으로 구매할 수밖에 없었다. 

복지부와 건보공단은 지체장애에 더해 시각장애 또는 발달장애가 중복으로 있을 경우에는 안전상의 문제 때문에 전동휠체어 지원이 어렵다고 밝혔다. 그 근거로 국민건강보험 시행규칙 별표7의 ‘보조기기에 대한 보험급여기준’을 들었다. 이에 따르면 전동휠체어 지원 기준을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전동휠체어를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는 경우’라고 명시하고 있다. 

국민건강보험 시행규칙 별표7의 ‘보조기기에 대한 보험급여기준’에는 전동휠체어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전동휠체어를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는 경우’라고 명시하고 있다. 사진 국민건강보험 시행규칙 캡처
국민건강보험 시행규칙 별표7의 ‘보조기기에 대한 보험급여기준’에는 전동휠체어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전동휠체어를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는 경우’라고 명시하고 있다. 사진 국민건강보험 시행규칙 캡처

복지부는 “전동 보조기기의 경우, 안정성 때문에 스스로 운전할 수 있는 것을 기준으로 한다”며 “세부적인 지침과 고시사항은 건강보험공단 보조기기급여부에서 정한다”라고 밝혔다.  

건보공단 급여사업실 보조기기급여부에서는 “스스로 운전 가능 여부에 대한 판단은 결국 의사가 결정해, ‘보장구 처방전’을 내야 가능하다. 건보공단이 장애와 재활분야의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그럼 의사 재량으로 희영 씨에게 처방을 내리면 전동휠체어 지원이 가능한지 묻자, 조서현 보조기기급여부 팀장은 “휠체어 보장구 처방전과 안과 전문의가 ‘안전하게 스스로 전동휠체어를 운전할 수 있다’는 내용으로 ‘소견서’를 써준다면 지원을 아예 못 받는 건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는 현실에서 불가능에 가깝다. 희영 씨는 서울대병원 안과에 소견서 발급을 요청했지만, ‘누가 책임질 수 있느냐?’며 단박에 거절당했다. 

이처럼 시각장애인이 스스로 운전을 할 수 없어 전동휠체어 지원이 안 된다는 근거가 정확히 명시돼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복지부, 건보공단, 의료기관이 암묵적으로 배제하고 있을 뿐이다. 건보공단은 중복장애인에게 전동휠체어 지원이 어려운 이유로 ‘한정된 예산’을 꼽는다. 정부는 ‘안전’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예산’ 문제다.

- 결국 이사 준비… 이사하더라도 문제는 계속돼

희영 씨는 전동과 수동이 모두 가능한 수전동 휠체어 대여와 수동휠체어에 장착해 필요시에 전동휠체어처럼 쓸 수 있는 휠체어 전동화키트 장착을 알아보고 있다. 그러나 수전동휠체어 대여에는 최장 2년을 기다려야 한다. 대기가 짧을 경우에는 대여 기간이 1개월밖에 안 된다.  

또한 수전동휠체어와 전동화키트 등은 경사각 10도를 넘을 경우에는 오르기가 쉽지 않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의견이다. 희영 씨의 아파트 단지 입구에서 집까지 경사는 그보다 가파르기에, 수전동휠체어를 이용하더라도 지금의 문제점을 해결하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전동휠체어 지원도 받을 수 없고, 수전동휠체어를 대여할 수도 없고, 환경 개선도 불가피해 희영 씨는 이사를 준비하고 있다. 어마어마한 경사로를 더 이상 견딜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여름에는 한 번 외출하면 땀범벅이 되고, 겨울에는 휠체어 휠 만지는 게 (손이 시려서) 너무 힘들어요. 4년 동안 여러 곳에 환경개선과 전동휠체어 지원, 수전동휠체어 대여를 알아봤지만 방법이 없어요. 너무 답답하죠.”

그러나 이사를 가더라도 문제가 끝난 게 아니다. 집 주변만이 희영 씨의 생활환경은 아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든 가파르고 포장이 안 된 길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전동휠체어 지원만으로 희영 씨의 이동이 완전히 자유로워지는 것은 아니다. 희영 씨는 “시각장애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전동휠체어도’ 지원받지 못해 왜 이렇게까지 고군분투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씁쓸함을 감추지 못했다. 

이동환경이 집 주변에만 한정되지 않는다. 지난 3월 LG트윈타워 농성장에 연대방문한 이희영 후보(제일 왼쪽). 사진 탈시설장애인당
집 주변만이 생활환경은 아니다. 지난 3월 LG트윈타워 농성장에 연대방문한 이희영  씨(제일 왼쪽). 희영 씨는 탈시설장애인당 후보로 활동했다. 사진 탈시설장애인당

- 장애인 삶 고려하지 않는 ‘예산 맞춤형’ 보조기기 지원 제도 

사지마비 장애인이나 뇌병변 장애인처럼 스스로 운전하기 어려운 경우, 전동휠체어 컨트롤러를 활동지원사가 대신 운전하기도 한다. 희영 씨는 지금도 활동지원사가 수동휠체어를 대신 운전한다. 전동휠체어를 대신 운전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김종배 연세대학교 작업치료학과 교수는 “전동휠체어가 필요한 사람들이 전동휠체어를 잘 이용할 수 있는 보조기기를 추가로 장착해주는 게 마땅하다. (희영 씨의 경우라면) 활동지원사가 운전할 수 있게끔 전동휠체어 뒤에 별도의 컨트롤러를 장착하는 방법도 있다”라며 “정부가 직접 운전 할 수 없는 장애인을 지원하는 사람(가령 활동지원사)이 안전하게 운전할 수 있는 품목 추가를 적극 고려하면 된다”고 제시했다. 

이어 “현재 전동휠체어 국가 지원은 20년 전과 똑같이 209만 원에 멈춰 있다. 장애인도 자신에게 맞는 휠체어가 필요하다”라며 “장애인의 이동권은 물론이고, 장애인 보조기기 사용 권리에 대해서도 목소리를 내야 할 때다”라고 강조했다. 

보장구 처방전 일부. 전동휠체어와 스쿠터의 경우 신체장애 이외의 장애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보장구 처방전 캡처
보장구 처방전 일부. 전동휠체어와 스쿠터의 경우 신체장애 이외의 장애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는다. 보장구 처방전 캡처

중증장애인의 경우, 어떠한 보조기기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질이 달라진다. 보조기기를 통해 ‘장애’를 이유로 제한되었던 삶의 주도권을 되찾아오기도 한다. 예를 들어, 과거에는 양손 사용이 어려웠던 뇌병변장애인은 수동휠체어를 탄 채 누군가가 밀어줘야만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나 전동휠체어가 보편화되면서 턱이나 발 등 움직일 수 있는 신체 부위가 단 한 군데만 있다면 전동휠체어 컨트롤러로 자신이 움직이고 싶을 때 가고 싶은 방향으로 이동할 수 있게 됐다. 이는 장애인 당사자들에게 커다란 해방감을 줬다. 

물론 무조건 수동휠체어보다 전동휠체어가 좋다고 단언하기도 어렵다. 어떠한 휠체어를 사용하느냐는 장애유형과 정도, 기동성, 선호 등에 따라 다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애에 대한 천편일률적인 기계적 지원이 아닌, ‘장애가 있는 사람’의 삶을 고려한 다각적 지원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김상희 노들장애인자립생활센터 사무국장은 “전동휠체어 보장구 처방전을 보면 시각장애나 발달장애 등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음을 알 수 있다”면서 “국가가 장애인 보조기기에 대한 상상력과 성의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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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마이너뉴스 https://www.beminor.com/news/articleView.html?idxno=21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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