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12월 5일 (화) 전 주기적으로 국민 정신건강을 지원하는, 이름하여 ‘정신건강정책 혁신방안’을 발표하였다. 이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자살률을 감축하고 정신질환 예방을 강화하며 또 중증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와 복지서비스를 확충하겠다는 정책과제를 담고 있다. 또 그동안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치료·요양에 편중’되었고 ‘사전 예방, 조기치료, 회복 및 일상복귀 지원이 부족’했던 종전 정책을 반추하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자 ‘예방부터 회복까지’라는 비전을 선포한다고 언급한다.
그러나 이번 혁신방안이 ‘새로운 패러다임’을 형성하고 ‘혁신적인 정신건강 정책과제’를 선도하고 있다고 보기는 매우 어렵다. 오히려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전략은 2021년 발표된 온국민 마음건강 종합대책(제2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의 내용을 반복 재활용하고 있거나, 국제적 인권 패러다임에 역행하는 수준의 정책과제들을 내세울 뿐이다. 이를 ‘혁신’이라고 칭하는 것은 여전히 정부가 현재의 정신건강 정책 실태가 얼마나 후진적인지, 앞으로 나아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4대 전략 및 핵심과제 중 중증 정신질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전략 및 핵심과제로는 총 4개 중 <과제2: 중증 정신질환은 신속하게 치료하고 지속적으로 관리>, <과제3: 중증 정신질환자 일상회복을 위한 복지체계 마련>이 해당된다. 정신건강복지법으로의 개정 이후에도 정신질환자의 재입원율이 200.4일(2021년 기준)로 유지된 점, 정신장애인의 고용과 빈곤 실태 역시 오히려 악화된 점 등을 미루어보아 중증 정신질환자에 대한 정신건강 대책에 정말로 ‘혁신’이 필요한 시점에서, 이와 같은 정부 발표는 한탄스러울 뿐이다.
1. 중증 정신질환을 ‘신속하게 치료’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한다?
‘중증 정신질환은 신속하게 치료하고 지속적으로 관리한다’는 정부가 발표한 전략은 그 제목에서부터 정부가 중증 정신질환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가 드러난다. 정부는 중증 정신질환자를 그저 사회의 안위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치료해야 하고 관리해야 할 수동적 대상으로 바라볼 뿐이다. 또 정부가 과연 정신장애인이 실제로 필요로 하는 치료와 서비스에 대한 이해와 관심이 있는지도 의문스럽다. 이는 세부 과제들에서 더욱 잘 드러난다.
② (의료 질 향상) 정신질환도 신체질환과 대등한 수준의 의료 질을 확보한다.
- 폐쇄병동 집중관리료, 격리보호료 등 인상, 치료수가 신설 보상 등을 통해 인력투입 및 치료환경을 개선한다.
-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법입원제도 도입 관련 사회적 논의를 시작한다.
▶ ‘폐쇄병동 집중관리료’,‘격리보호료’를 인상하는 것은 신체질환과 대등한 수준의 의료 질 확보와 전혀 어긋나는 조치이다. 그 어떤 신체질환자도 폐쇄병동에 갇히거나 병원 내에서 격리와 강박에 순응하도록 요구받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정신질환자에 대한 감금과 격리에 더욱 많은 재원을 투자하겠다는 정부의 의지는 모순되기 그지없다.
▶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법입원제도를 도입하는 것 역시 의료 질 확보와는 거리가 멀다. 강제적인 입원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궁리해야 하는 시점에서 단순히 사법입원제도 도입의 논의를 시작해보겠다는 선언은 인권 기반의 입원제도 마련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의미로 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 또 이 두 가지 과제는 이미 앞서 정부가 발표했던 내용들로 혁신이 아닌 반복이며, 진정 혁신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싶다면 정부는 강제적 입원제도 철폐 내지 개선 방안, 폐쇄병동 감축 방안, 병원 내 격리강박의 대안적 수단 개발 계획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할 것이다.
③ (지속치료 유지) 퇴원 후 치료유지를 위한 시범수가의 정규수가화, 장기지속형 주사제 본인부담을 완화한다.
④ (위험환자 치료중단 방지) 자타해 위험 있는 환자에 대한 외래치료지원제를 활성화하고, 정보연계도 내실화한다.
- 특히 자타해 행동이 있었던 퇴원환자는 필요시 본인 동의가 없어도 정보연계·치료되도록 절차와 체계를 마련할 계획이다.
▶ 치료를 유지하도록 하고 치료 중단을 방지함으로써 모든 중증 정신질환자가 약물치료를 받게 하는 것이 위 세부과제의 목적이다. 이 안에서 정신질환자에 대한 인권적 고려는 찾아볼 수가 없다. UN CRPD에서는 대한민국 정부의 장애인권리협약 이행에 관한 2·3차 병합심의 최종견해에서 현재 대한민국 정신의료서비스가 ‘폭력, 고문, 굴욕적 대우’에 해당하며, 강제적이고 불필요한 ‘향정신성약물의 사용을 즉각적으로 중단’할 것을 권고한다. 또한 UN 탈시설가이드라인에서는 진단이나 치료를 선택하기 전에 지역사회 서비스를 우선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할 것을 권고한다. 위 세부과제는 기존의 치료 및 의료적 모델을 더욱 공고히 할 뿐 전혀 혁신이라고 바라볼 수 없다. 치료나 손상의 관점에서 벗어나 ‘회복’, ‘혁신’을 주장하고자 한다면 더 이상 정신질환자를 ‘위험한 사람’, ‘증상을 소거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을 중단해야 할 것이다.
2. 중증 정신질환자 일상회복을 위한 복지체계 마련은 어디에?
현행 정신건강복지법 상의 복지서비스 관련 법조항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고 그 결과 정신질환자는 복지서비스를 받지 못한 채 방치되고 있었다. 정신질환자들은 절반 가량의 지자체에는 설치되어 있지도 않은 정신재활시설과 부족한 예산 및 인력으로 형식적 사례관리에 급급한 정신건강복지센터에 의존해야 했다. 동료지원, 회복지원, 주거지원, 고용지원은 허울만 있을 뿐 정신질환자들의 욕구와 필요에는 턱없이 부족한 상태로 오랜 기간 방치되어 왔다. 정부가 ‘회복’을 외치기 위해서는 섬세하고 촘촘한 복지체계를 내놓아야 한다. 그러나 세부 과제들에서는 그러한 노력과 고민을 찾아볼 수가 없다.
① (복지서비스 확대) 정신재활시설 및 복지서비스를 개발·확충한다.
- 시군구 당 정신재활시설의 최소 설치기준을 마련하고, 시설설치가 어려운 경우 정신건강복지센터 기반의 회복지원사업을 제공하도록 권고한다.
- WHO 권고(동료지원쉼터, 지원주택 등) 서비스 사업모델을 개발한다.
▶ 정신재활시설에는 다양한 유형의 시설이 포함된다. 2021년 기준 총 350개의 정신재활시설 중에는 공동생활가정(187개소)이 절반 가량을 차지하고 있으며, 그밖에 주간재활시설(85개소), 지역사회전환시설(7개소), 직업재활시설(17개소) 등은 매우 미미한 수준으로 설치되어 있다. 즉, 정신재활시설이 설치되어 있는 시군구 중에서도 3-5명이 입소하는 공동생활가정 몇 개소만 설치되어 있을 뿐 그밖의 주간재활, 전환지원, 직업재활 등의 서비스는 전혀 기대하기 어렵다는 의미이다. 정신질환자의 회복을 목적으로 한다면 정부는 다양한 유형의 정신재활시설이 전국적으로 인구에 대비하여 설치될 수 있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 또한 정신재활시설과 정신건강복지센터 기반의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은 이미 온국민 마음건강 종합대책(제2차 정신건강복지기본계획)에서도 발표된 바가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욱 구체적인 실행방안을 제시하지 못한 것은 그 동안 정부가 기존 계획조차도 방치했다고밖에 읽혀지지 않는다.
▶ 정신재활시설과 정신건강복지센터라는 전달체계를 통해서만 서비스를 제공한다면 정신질환자에 대한 복지체계 기반은 지금과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러한 점에서 WHO에서 권고한 서비스 사업 모델을 개발하고자 한다는 것은 환영하며, UN CRPD, WHO QualityRights의 이념적 좌표가 반드시 동반된 형태의 서비스가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② (정신요양시설 개편) 입소절차 및 인력기준을 개선하고, 장기적으로는 재활시설로 개편하는 방안을 마련한다.
- 또한 입소자 전원에 대한 실태조사 후 필요시 적합한 시설로 재배치한다.
▶ 위 세부과제는 통탄스럽기 그지없다. 정신요양시설을 재활시설로 개편한다고만 해서 탈시설이 이루어지는가? 또 입소자를 평가하여 다시 재시설화한다는 것이 정부가 내세우는 전략이란 말인가? 이는 UN CRPD와 UN 탈시설가이드라인의 이념에 완전히 역행하는, 수치스러운 발상이다.
▶ 정신요양시설을 개편하고 (장기)입소자들의 탈시설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정신의료기관 및 정신요양시설을 대상으로 하는 탈(원)시설로드맵, 정신요양시설의 단계적 소규모화 및 기능개편 방안, 퇴(원)소 이후 지역사회 정착 지원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할 것이다.
③ (고용·주거 지원) 정신질환자의 경제적 독립을 위한 고용지원 및 사회적 자립을 위한 주거를 지원한다.
- 「사회적기업 육성법」상 ‘취약계층’에 중증 정신질환자를 포함하고, 정신장애인에 특화된 장애인 일자리도 개발하여 지원한다.
- 자기 관리가 가능한 정신질환자를 위한 ‘특화형 매입임대주택’을 공모하는 등 주거지원도 강화한다.
▶ 위 세부 과제에서 제시한 서비스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나, 이는 정신질환자의 효과적인 고용과 주거 지원을 위해서는 턱없이 미비하다. 사회적기업 육성법상 취약계층에 중증 정신질환자를 포함한들 정신질환자를 고용하는 사회적기업 자체가 늘어나지 않는다면 실효성은 기대하기 어렵다. 자기 관리가 가능한 정신질환자로 매입임대주택 제공이 제한된다면 실질적으로 갈 곳이 없고 주거가 불안정한 중증 정신질환자는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정부는 장애인복지체계에 준하는 수준의 직업재활 및 고용연계 프로그램, 정신질환자를 위한 일자리에서의 정당한 편의제공 방안, 단계별 주거서비스의 전국 설치 방안(자립생활주택, 지원주택) 등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할 것이다.
④ (권리보호 강화) 정신질환자 차별 해소 및 의사결정 지원을 강화한다.
- 보험가입 차별 점검 및 정신질환자 보험상품 개발연구를 추진하고, 자격취득 제한 규제 완화를 추진한다.
- 정신건강사전의향지시서 도입을 검토하고, 공공후견 범위를 확대한다.
▶ 위 세부과제가 진정 ‘권리보호의 강화’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스럽다. 정신질환자가 보험가입에서 차별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에 대한 해결방안은 정신질환을 이유로 보험가입에 제한받지 않도록 하는 조치여야 할 것이다. 정신질환자만을 위한 별개의 보험상품을 개발하는 것은 또 다른 차별과 낙인을 야기한다.
▶ 공공후견 범위를 확대하는 것은 권리보호의 강화라고 보기 어렵다. 2022년 UN CRPD 최종견해에서는 성년후견제의 폐지를 권고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에서 후견 범위를 확대하겠다고 한 것은 CRPD 정신에 역행하는 조치이다. 기존의 공공후견 제도가 ‘의사결정 지원제도’로의 기능으로 전환될 수 있게 하는 방안, ‘절차보조서비스’의 법제화 및 의사결정 지원 기능 확립 방안을 구체적으로 제시하여야 할 것이다.
▶ 자격취득 제한 규제 완화, 정신건강사전의향지시서의 도입 검토와 같은 과제는 환영하나; 수십개의 별개의 법령들에 포함된 자격취득 제한 조항들을 어떻게 개선해나갈 것인지에 대한 계획, 정신건강사전의향지시서의 작성·공증·활용을 위한 전달체계 마련을 위한 계획을 추후 구체적으로 제시해야 할 것이다.
3. 과연 정부는 중증 정신질환자를 기본적인 인권을 보장받아야 할
‘국민’으로 바라보고 있는가?
정부는‘전 국민’을 위한 ‘정신건강 혁신방안’이라고 발표하였지만, 과연 중증 정신질환자를 국민 중 한 명으로 바라보고 있는지 의문스럽다. 그저 의료시스템 상에서 치료받고 관리받아야 할 대상이자 치료·관리에서 벗어날 시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할 대상으로 또 한 번 낙인찍을 뿐이다. 또 병원 및 요양시설에 입(원)소 된 정신질환자들에 대한 적극적인 탈(원)시설 의지는 찾아볼 수가 없다.
그리고 무엇보다 장애인복지법 제15조 폐지 이후 2년이 지나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신장애인의 복지 환경은 변한 것이 아무 것도 없다는 사실. 이번 혁신방안이 비판 받아야 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지난 2년 간 손 놓고 있다가 이제서야 정부가 발표한 ‘혁신방안’에는 정신장애인 복지 환경 변화에 기대와 희망을 가질 수 있는, 말 그대로 ‘혁신적인’ 계획의 청사진은 그려지지 않았다.
이 혁신방안은 향후 10년 간의 계획을 담은 것이다. 장차 10년이라는 세월에 대한 정부 의지가 고작 이 정도라면, 2030년 과연 우리는 어떤 정신건강을 맞이할 수 있을 것인가? 2022년 UN CRPD 정부심의 최종견해에서는 ‘우리는 이전의 권고를 반복하며, 여전히 우려스럽다’는 문구를 여러 번 찾아볼 수 있다. 아마 다음 4차 정부심의는 2030년 쯤 열릴 것으로 전망된다. 그 시기 국제 사회가 우리나라의 정신건강 정책을 평가할 때에도 ‘이전의 권고를 반복’한다거나 ‘여전히 우려스럽다’는 문구는 찾아볼 수 없어야 할 것이다.
2023년 12월 8일
사단법인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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