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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의회 앞 탈시설 외친 발달장애인들 “자립은 혼자 사는 게 아니에요”
분류비마이너뉴스 글쓴이김소영 기자 게시일2024-04-26 조회수32
‘장애인의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과 나누는 자립이야기: 상처받고, 사랑하고, 도망쳤던 내가 기억하는 시설’ 토크쇼 참가자가 “시설이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싶다”, “장애인의 시설 입소는 부모의 권리가 아니고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권리이다”라고 알록달록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김소영
‘장애인의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과 나누는 자립이야기: 상처받고, 사랑하고, 도망쳤던 내가 기억하는 시설’ 토크쇼 참가자가 “시설이 아니라 제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살고싶다”, “장애인의 시설 입소는 부모의 권리가 아니고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권리이다”라고 알록달록 적힌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 김소영

지적장애와 자폐성장애를 가진 장애인을 통칭하는 ‘발달장애인’은 시설에 거주하는 장애인 3만 명 중 80%를 차지한다. 발달장애인들은 서울시에 “더 이상 우리를 시설에 가두지 말라”며 탈시설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라고 요구해 왔다. 2022년 6월,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서울시 장애인 탈시설 및 지역사회 정착 지원에 관한 조례(아래 탈시설조례)’이다. 그런데 발달장애인을 비롯한 장애계의 투쟁으로 얻어낸 탈시설조례가 없어질 위기에 처했다. 탈시설을 반대하는 세력의 주민조례로 ‘탈시설조례 폐지조례안’이 청구됐고, 지난 19일에 개회한 서울시의회 임시회에서 시의회 의장이 해당 조례안을 발의한 것이다. 탈시설조례는 제정 2년 만에 폐지의 갈림길에 서게 됐다.

24일 오후 2시, 발달장애인들이 서울시의회로 모였다. 탈시설조례 폐지를 막기 위한 ‘24시간 공동행동’을 진행하기 위함이다.

‘장애인의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과 나누는 자립이야기: 상처받고, 사랑하고, 도망쳤던 내가 기억하는 시설’ 토크쇼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발달장애인 활동가들. 왼쪽에서부터 박초현, 박경인, 문석영, 소형민, 박현철. 사진 김소영
‘장애인의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과 나누는 자립이야기: 상처받고, 사랑하고, 도망쳤던 내가 기억하는 시설’ 토크쇼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는 발달장애인 활동가들. 왼쪽에서부터 박초현, 박경인, 문석영, 소형민, 박현철. 사진 김소영

오후 6시가 되자, 각자 이야기를 나누던 발달장애인들이 자리를 정돈하고 무대 쪽을 바라본다. 무대 앞에는 6개의 의자가 놓였다. ‘장애인의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과 나누는 자립이야기: 상처받고, 사랑하고, 도망쳤던 내가 기억하는 시설’ 토크쇼에 나서는 사람들의 자리다. 이날 사회는 하은 피플퍼스트성북센터 활동가가 맡았으며, 패널로는 탈시설을 준비 중인 박초현, 탈시설한 지 8년 된 박경인, 탈시설 당사자 문석영, ‘자립을 꿈꾸는 새내기’ 소형민, 자립한 지 3년 된 박현철이 참여했다.

시작 전에 하은 활동가는 “질문이 기억 안 나거나, 질문에 대답하기 어렵거나, 질문이 마음에 들지 않는 경우 언제든지 반박이 가능하다”고 장난처럼 말했다. 실제로 패널들이 질문에 대답을 하지 않거나 질문을 까먹어 되물어보는 경우가 있었다. 그렇게 2시간여 자유롭게 이야기가 이어지는 동안, 패널들을 향한 응원과 지지가 담긴 호응이 끊이지 않았다. 탈시설한 당사자에게는 탈시설을 결심한 과거에 전하는 위로와 칭송의 박수를, 탈시설을 준비 중인 이에게는 용기를 주기 위한 격려의 박수를 건넸다. 사람들은 “(자립) 할 수 있어”, “우리가 함께 있어” 등의 말을 서로에게 외쳤다. 탈시설조례 폐지를 막기 위해 다양한 이야기를 꺼낸 이들의 용기로 가득했던 현장을 전한다.

‘장애인의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과 나누는 자립이야기: 상처받고, 사랑하고, 도망쳤던 내가 기억하는 시설’ 토크쇼의 사회를 맡은 하은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 사진 김소영
‘장애인의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과 나누는 자립이야기: 상처받고, 사랑하고, 도망쳤던 내가 기억하는 시설’ 토크쇼의 사회를 맡은 하은 피플퍼스트성북센터 활동가. 사진 김소영

- “자립은 혼자 살아가는 것 아닌 어려울 때 도움받으며 사는 것”

박초현은 7살 때부터 지금까지 20년간 장애인거주시설에 살고 있다. 현재는 시설이 운영하는 체험홈에서 올해 안에 자립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에게 시설은 장애인의 의사결정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 곳이다. 사회복지사들은 외출 시에 의사 표현을 하지 못하는 시설 거주 장애인들에게 “그냥 집에 있어”라고 말한다. 그런 사회복지사에게 박초현은 “우리 다 같이 하면 안 되나요”라고 이야기하며 동료들과 함께 하고자 했다. 그러자 그에게 돌아온 말은 “그럼 네가 애들 지원해. 그럼 같이 가줄게. 네가 애들을 책임지지 않으면 나는 다 두고 갈 거야”이다.

‘장애인의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과 나누는 자립이야기: 상처받고, 사랑하고, 도망쳤던 내가 기억하는 시설’ 토크쇼에서 박초현 활동가가 자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장애인의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과 나누는 자립이야기: 상처받고, 사랑하고, 도망쳤던 내가 기억하는 시설’ 토크쇼에서 박초현 활동가가 자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자립을 꿈꾸고 있는 박초현은 “탈시설조례가 폐지되어 평생 시설에 살게 될까 봐” 걱정하고 있다. “만약 자립을 한다 하더라도 지금 시설에서 같이 살고 있는 동료들을 놔두고 나 혼자 나오게 되는 것”도 마음에 걸린다. 자신 또한 아직 시설에 살고, 앞으로도 계속 시설에 살게 될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이 사는 곳을 부정하는 말을 하는 것도 편치 않다. 그래서 그는 함께 시설에 거주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죄책감과 미안함을 느낀다. 그럼에도 그가 자립을 결심한 이유는 “나 자신을 사랑하기 위해서”이다. “시설은 자기 자신을 사랑할 수 없게 만드는 곳이에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을 혼자 못 하게 하거든요. 시설은 저에게 집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없어져야 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발달장애인이 혼자서 어떻게 사냐”이다. 이 말 뒤에는 혼자서 모든 것을 다 해내야 하고, 발달장애인은 그 모든 것을 다 해낼 ‘능력이 없다’는 판단이 숨어 있다. 그러나 자립을 준비하는 박초현의 생각은 다르다. 박초현은 “혼자 다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혼자 할 수 있는 게 많아야 자립할 수 있다’라고 말하는데, 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요. 어려운 건 도움받아도 돼요.”

박경인이 그랬다. 태어나자마자 시설에서 살다가 8년 전, 시설을 박차고 나온 박경인은 많은 이들의 지원과 도움으로 지금의 박경인이 될 수 있었다. 그 시간들 덕분에 그는 지금 누군가의 탈시설을 지원하고 돕는 사람이 됐다.

‘장애인의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과 나누는 자립이야기: 상처받고, 사랑하고, 도망쳤던 내가 기억하는 시설’ 토크쇼에서 박경인 활동가가 탈시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장애인의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과 나누는 자립이야기: 상처받고, 사랑하고, 도망쳤던 내가 기억하는 시설’ 토크쇼에서 박경인 활동가가 탈시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박경인은 탈시설을 하기 전, 시설을 여섯 군데나 옮겨야 했다. 임마누엘신월공동체에 살았을 때 그는 사회복지사에게 폭행을 당했다. 박경인의 학교 선생님이 이 사실을 알고서 시설에 알렸다. 가해자는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고 자진 퇴사했다. 그로 인해 박경인은 졸지에 ‘사회복지사를 내쫓은 내부고발자’가 됐다. 그 이후에 입사한 다른 사회복지사들은 박경인을 부정적인 시선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 눈초리에 박경인은 더욱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그러한 시간이 지속되면서 시설 안에서 박경인은 우울증에 걸렸다. 자살 시도를 했다. 사회복지사가 그의 의사를 묻지 않고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켰다. 퇴원한 이후에도 ‘쟤 정신 나갔어’, ‘정신병약 먹는대’ 같은 이야기를 들어야만 했다. 다시 돌아온 시설은 여전히 그의 의사는 묻지 않았고, 그사이 함께 사는 동료도, 사회복지사도 계속 바뀌었다. 박경인은 결심했다. 시설을 박차고 나오기로. 박경인은 이날 자신을 “시설을 박차고 나온 ‘박찬 경인’”이라고 소개했다. 지금 박경인은 ‘전국탈시설장애인연대 대표’로 활동하며 자신의 삶을 근거로 탈시설이 필요한 이유를 세상에 외치는 활동가로 살고 있다.

그러나 자립에 대한 발달장애인 당사자의 고민이 이처럼 모두 거침없는 것은 아니다. 소형민은 지금 부모님과 함께 산다. 시설에 살아본 경험은 없다. 그 또한 부모님으로부터의 자립을 꿈꾸지만 걱정도 크다. 성인이 된 발달장애인의 걱정은 성인 비장애인의 걱정과는 조금 결이 다르다.

“집이 없어 어디로 자립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솔직히 시설로 가게 될까 봐 걱정되기도 해요. 집을 구하더라도 이웃들이 절 싫어할까 봐, 장애인이라고 차별할까 봐 걱정돼요. 제일 두려운 건 ‘장애인이 왜 자립했냐’고 생각하는 거요.”

‘장애인의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과 나누는 자립이야기: 상처받고, 사랑하고, 도망쳤던 내가 기억하는 시설’ 토크쇼에서 소형민 활동가가 자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장애인의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과 나누는 자립이야기: 상처받고, 사랑하고, 도망쳤던 내가 기억하는 시설’ 토크쇼에서 소형민 활동가가 자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 국가가 다양한 지원 해주면 자녀 시설 보내고 싶은 부모 없을 것”

발달장애인 당사자뿐만 아니라 가족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도 가졌다. 10개월 전 자립해서 광진구에서 혼자 살고 있는 하림 씨는 어머니와 함께 자리에 함께했다. 하림 씨의 어머니는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어머니로서 솔직한 심정을 전했다.

“직접 활동하며 시설이 어떤 곳이지 알게 되고, 아들이 자립을 해서 자립생활이 어떤 것인지도 알게 되었어요. 그래도 발달장애인의 탈시설을 반대하는 부모님들의 마음도 사실은 조금 이해가 돼요. 밖에 나와서 활동하지 않아 본 부모들은 걱정될 거예요. 이 세상에 어떤 부모가 내 자녀가 장애가 있다고 해서 시설에 넣어버리고 싶겠어요. 국가가 발달장애인을 책임져주지 않기 때문에 탈시설에 반대하는 거예요. 다른 방법이 없으니 시설로 보내야 하지 않을까 고민하는 거예요. 국가가 발달장애인이 지역사회에 나와서 잘 지낼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해준다면 시설에 보내고 싶어 하는 부모님은 아마 없을 거예요.”

‘장애인의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과 나누는 자립이야기: 상처받고, 사랑하고, 도망쳤던 내가 기억하는 시설’ 토크쇼에서 발달장애인 하림 씨의 어머니가 발달장애인의 자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장애인의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과 나누는 자립이야기: 상처받고, 사랑하고, 도망쳤던 내가 기억하는 시설’ 토크쇼에서 발달장애인 하림 씨의 어머니가 발달장애인의 자립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진 김소영

하림 씨의 어머니 옆에 있던 김성순 피플퍼스트광진센터 활동가도 발달장애인 자녀를 두고 있다. “처음에 아이가 자립하고 나서 아이의 집에 자주 갔어요. ‘잘할 수 있을까. 밥은 잘 먹고 있나’ 걱정되어서요. 자립하지 않은 것 같이 느껴질 정도로 자주 집에 들락거렸어요. 하지만 지금은 거의 안 가요. 밥을 사서 먹든, 스스로 알아서 해먹든 그것은 다 자신의 선택이에요. 빨래가 밀린다고 해도 그것도 자신의 선택인 거예요.”

친구들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었다. 이현주 피플퍼스트서울센터 활동가는 박경인과 티격태격하며 싸운 이야기를 들려줬다. 함께 활동했던 그 시간은 장애, 비장애로 이분화된 어떤 구분을 허물어뜨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우리사회가 기대하는 어떠한 ‘낭만적 관계’를 지향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이현주 활동가는 “다 그렇게 사는 거 아닌가요”라고 말하며 웃었다.

“경인은 제게 친구이기도 하고 조력자이기도 해요. 사무실에서 열심히 일을 하다가도 밖에 나가면 제가 잘 넘어지고, 지하철도 잘 못 타고 버스도 잘 못 타요. 그럴 때 저희 멤버(발달장애인 활동가)들이 도와줘요. 그렇게 친구이기도 하고, 조력자이기도 한 멤버들과 많이 싸우기도 해요. 불과 이틀 전에도 사람들 다 있는 데에서 싸웠어요. 그러다가도 ‘왜 싸웠나 몰라. 우린 너무 행복하다’ 생각하며 서로 끌어안고 잤는데 그 다음 날 아침에 또 싸웠어요. 저희는 이렇게 살아요. 근데 다 그렇게 사는 거 아닌가요?”

‘장애인의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과 나누는 자립이야기: 상처받고, 사랑하고, 도망쳤던 내가 기억하는 시설’ 토크쇼 참가자 전원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김소영
‘장애인의 부모, 형제자매, 친구들과 나누는 자립이야기: 상처받고, 사랑하고, 도망쳤던 내가 기억하는 시설’ 토크쇼 참가자 전원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사진 김소영

한편, 25일 진행된 서울시의회 보건복지위원회 회의에서 탈시설조례 폐지안은 안건에서 제외됐다. 해당 안건은 다음 회기에서 처리될 예정이다. 다음 회의는 6월 10일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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