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한 권리 운동의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장애인들은 여전히 죽음과 가까이 있다. 한국의 발달장애인 평균 기대수명을 조사한 결과 지적 장애인은 56.3세, 자폐성 장애인은 23.8세로 장애인들 중 가장 낮았다. 특히 ‘참사’라 호명되는 발달장애인 존속살해는 끔찍하고도 불행하게 지속되고 있다. 발달장애인을 살해한 가족들이 자기마저 죽거나 죽음에 실패하여 법정에 간다 하더라도 가벼이 처벌된 사례는 그간 부지기수였다. 발달장애인에 대한 지원과 돌봄은 사적 영역으로만 남겨두고서 이들을 죽이는 것은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죽임의 형태, 이 잔인한 모순을 그간 사회는 용인해왔다. 개인이 저지른 살해이긴 하지만, 근저에는 통상 사회 제도적인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는 걸 상기해 보면 (발달)장애인의 죽음은 사회적으로 살 가치가 없는 사람이 사라지는 것 이상이 아닌 것이다. 물론 발달장애인들에 대한 지원과 네트워크들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가족들이 져야 할 부담이 상당한 것은 사실이다. 당사자와 물질적·정서적 환경, 주변인들, 이를 바라보는 나의 상태까지 끝없이 살피고 관리하는 삼중 사중의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체제가 낳은 기후위기 속에서 가장 먼저 죽는 사회적 소수자, 그들 중에서도 발달장애인은 가장 먼저 호명된다. 가족에 의해 살해되는 발달장애인의 사건을 두고도 ‘참사’라는 단어 말고 다른 말들이 들리지 않는 것 역시 문제적이다. 나조차 발달장애 당사자의 가족으로서 숱하게 절망하고 죽음에 가까운 절망감들을 여전히 한 편에서는 갖고 있다. 그러나 그런 서사들만 알려지는 것은 장애에 대한 사회적 억압을 은폐하며, 편견만 강화하는데 일조한다는 사실 또한 알고 있다. 예컨대 가정폭력으로 죽은 여성들을 생각해보면 남성 생계부양 모델이 근본 원인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는 것처럼. 그 모델 속에서 가족 구성원들은 가장으로 대표되는 남성 하나에 의존해 무능력하게 살아야 하고, 부양되어야 하는 존재로 그려졌던 것처럼. 그렇기에 한때 가장의 폭력은 쉽게 묵인되거나 정당화되었다. 양육자나 형제자매 등의 손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발달장애인들의 현실이 과연 이와 다르다 말할 수 있을까. 신경 발달의 차이로 인한 다른 삶의 양태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가혹한 것은 발전, 정상성, 속도만을 중시하는 사회다. 발달장애인들이 나름의 방식대로 살아갈 수 있는 다양한 환경들을 구성하고 조직해 내는 것은 전체 사회의 몫이지만 지금까지는 개별 가정에게만 맡겨 왔다. 노력의 지분을 가장 많이 차지하는 이들은 당연히 가까이 있는 가족들일 테지만, 이 가족들이 할 수 없는 것들까지 끝없이 요구하는 사회의 구조적 문제는 방치되어 있다. 우리가 고민하는 것들은 대체로 우리 스스로만 노력해서는 할 수 없는 것들이다. 발달장애를 이해하고 발달장애를 가진 구성원들을 어떻게 사회화할 것인가에 대한 노력들을 역으로, 사회에 국가에 요구하자. 실제 장애관련 단체들에서는 신경 다양성이라는 개념의 확산을 위해 연구와 교육에 매진하고 있으며, 교육권, 노동권, 주거권, 건강권 등 삶에서 누려야 할 각종 기본권과 24시간 지원을 요구하는 발달장애 국가책임제를 부모 단체를 비롯한 여러 장애인 단체 및 시민사회단체에서 요구하고 싸워나가고 있는 중이다.
한 꺼풀 벗겨보면 장애는 그 자체로 총체적인 삶의 형태다. 산다는 것 자체를 긍정이든 부정이든 어떤 특정한 의미로 정의할 수 없듯이 장애와 함께하는 삶은 마냥 힘들고 외롭고 고립되어 있지 않다. 어쩌면 깊은 파고를 건너야만 하는 운명이라도 서로의 삶을 함께 견뎌주는 사람들이 주변에 분명히 있다는 것만큼은 어쭙잖은 양육자에 불과한 나도 전할 수 있다. SNS를 하지 않는 양육자들이 있다면 해보고, 발달장애 관련 여러 이슈들을 팔로우업 해보시라, 발달장애에 대해 연구하거나 조력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도처에 있다. 네트워크를 맺을 수 있고, 심리·정서적 임파워링도 얻을 수 있다. 지역의 장애인 부모 조직을 찾아가 상담도 지원받고 활동도 해보시라. 이해받을 수 있고 함께 일궈가는 공동체의 기쁨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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