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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새벽까페 14_김종옥] 화요일의 마음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2-09-27 조회수908

이제 내게 화요일은 특별한 날이다. 나는 매주 화요일마다 오전과 오후에 발달장애를 가진 이의 가족, 발달장애를 가진 청년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오전에는 화요집회를 하고 오후에는 청년들과 만나는 수업이 있다. 에너지를 상당히 쏟는 일이기도 하고 에너지를 받는 일이기도 하다. 하루 사이에 쏟아내기도 하고 채우기도 하려니 마음노동이 여간이 아니다. 하루종일 골똘히 생각하는 게 많아서 화요일에는 종종 걷다가 걸음을 멈추고 멍하니 서있곤 한다.

 

- 긴 이야기의 시작, 화요집회

 

부모연대는 얼마 전부터 화요집회를 시작했다. 화요일마다 모여서 우리들의 이야기와 결의를 나눈다.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하려고 했으나 눈이 너무 많이 오거나 비가 너무 많이 오면 한 주 쉬어갈 터이다. 다음 주에, 그 다음 주에 이어가면 되니까.(^^) 그렇게 거듭하다 보면 화요집회는 이 나라 발달장애 가족의 상징과도 같은 행사가 될 것이다.

 

 

코로나19의 긴 터널을 지나며 발달장애를 가진 이와 그 가족의 죽음이 유난히 많은 차에, 우영우(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와 정은혜(우리들의 블루스)가 세상의 관심을 끌면서 발달장애인 가족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하는 기자들이 많다. 그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궁금하시면 화요집회에 오세요. 우리들의 사연과 분노와 희망의 이야기를 들려줄게요.

 

기자뿐 아니라 누구라도 화요집회에 나오면 듣게 된다.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와 이 세상에서 만난 인연, 같이 살아가는 이야기, 엄마투사 아빠투사가 된 사연, 세상에 대한 꾸짖음, 내가 원하는 자녀의 일상, 아직 다 못한 내 삶의 과제까지 마이크를 잡고 들려주는 이야기를 듣는다.

 

 

이왕 시작을 했으니 앞으로 우리들의 집회가 더욱 풍성해졌으면 좋겠어서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본다. 이야기도 하고, 때론 노래도 공연도 춤도 추었으면 좋겠다. 짧은 교육도 듣고 누굴 불러다 궁금한 것도 묻고 그랬으면 좋겠다. 그러다 점점 더 커져서 어쩌다 한 번씩은 행진하면서 시내를 한 바퀴 돌기도 하고, 깃발을 세운 텐트도 수십 채씩 치고 밤샘도 하고 그랬으면 좋겠다. 지나가던 이가 가만히 뒷자리에 와 앉았기도 하고, 먼 데서 일부러 찾아와서 기타니 하모니카 연주 선물도 해 주었으면 좋겠다. 모델 수업을 받는다는 형제자매가 제 친구들과 함께 와서 근사한 패션쇼도 벌여줬으면 좋겠고, 시 짓기를 좋아한다는 이가 시를 읊조리고 갔으면 또 좋겠다.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아름다운 청년이 와서 미국서 사는 누가 그랬던 것처럼 나 때문에 슬퍼하지 말라며 단호하게 일갈해줬으면 좋겠고, 하루 일과를 어떻게 꾸미고 싶은지, 어디로 여행을 다녀오고 싶은지도 살짝 들떠서 얘기해줬으면 좋겠다. 장애를 가진 이들의 형제자매들도 와서 일찍 철이 든 얘기며 아직 철이 안 든 얘기도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이 모든 우리들의 이야기가 그저 슬픔과 연민을 나누는 것만이 아니라 바르지 못한 세상에 대한 당연한 분노와, 평등한 세상을 향한 아름다운 희망과, 삶의 결단과 의지를 다지는 뜨겁고 즐거운 일이 되었으면 좋겠다.
 

 

 

자녀가 이제 일곱 살, 아홉 살이라는 이의 얘길 들으면 그가 걸어가야 할 길이 그려져서 탄식이 나온다. 청년이 되었다는 얘길 들으면 걸어온 험한 길이 단숨에 그려져서 또 탄식이다. 어느 하루 얘길 들으면 그의 나머지 364일이 눈에 보인다. 우리는 비슷비슷하면서도 저마다 다른 이야기를 들으며 오만가지 상념에 잠긴다.

 

 

두 아이가 모두 장애를 가진 이도 있고, 엄마가 또는 아빠가 암 투병 중인 경우도 있다. 홀로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이도 많았고, 홀로 키우다시피 하는 이도 많다. 많이 지쳐 보이는 이도 있었고, 그럼에도 힘을 내겠다는 말을 하며 하얗게 웃는 이도 있다.
 

 

저 슬픔을 어찌하나, 저 바다와 같은 슬픔을 어찌할 것인가. 내가 저 입장이면 어땠을까. 듣는 이들은 다들 그런 생각을 한다. 내가 저 이였으면 저렇게 잘 버텨낼 수 있을까. 아니면 저 이는 그 때의 나처럼 단지 비명을 지르지 않을 뿐, 모진 세월과 싸우느라 많이 지쳐있는 건 아닐까. 혹시 그 때의 나처럼 절벽 앞에 서서 바람을 맞으며 울고 있는 건 아닐까. 지금 당장 그의 등 뒤로 살며시 다가가 손목을 잡고 비탈길을 다시 내려와 줘야 하는 건 아닐까.

그런데 이야기를 들려주는 우리 동지가 먼저 우리 손을 잡는다. 나는 이렇게 버텨낼 테니 우리 함께 갑시다-. 대개는 이렇게 말을 맺는다. 그러면 모두는 또 하나의 위안과 또 하나의 결의를 가슴에 담게 된다. 우리들의 이야기판은 슬픔과 위로에서 그치자고 연 게 아니다. 우리들은 동지적 연민에서 힘을 얻어서 함께 견뎌내고 함께 밀어내며 세상을 바꿔나갈 것이다.

 

 

- 오후의 수다

 

 

화요일 오전에는 이렇게 가슴 저미는 사연을 듣고 울먹이다가, 우리가 이 세상에 할 일이 너무 많다고 주먹을 불끈불끈 쥐다가 오후에는 마음이 훨훨 난다. 발달장애를 가진 청년들을 만나는 일은, 얼마나 좋은 인연인지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청년들은 특별히 에너지가 넘쳐 보인다. 그래서 그들과 나누는 대화는 참 즐겁다. 그들은 모든 대화에 무척 성의가 있다. 눈동자에 힘을 주고 자신의 말을 천천히 또박또박 전달하기 위해 애를 쓴다. 남의 말이 끝나기 전에 끊어버리는 무례를 범하지도 않고, 남의 말을 비난하지도 않는다,(물론 몇몇은 수시로 자신의 핸드폰을 들여다 보는 데 열중한다) 이들 중 몇몇은 남의 말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딴청을 피우지만 다음 시간에 물어보면 남이 뭐라 했는지 잘 기억해내고, 몇몇은 자기가 했던 말도 안 한 것처럼 능청을 떨기도 한다.

 

 

자주, 그들이 하는 말에 마음이 뭉클하다. 즐거운 기억, 나빴던 기억, 치열한 생각, 곰곰 따져보는 고민이 모두 저마다 갖고 있는 큰 이야기보따리 사이를 비집고 튀어나온다. 대체로 즐거웠던 기억을 얘기할 때면 저마다의 에너지가 합쳐져서 햇빛 속 새들처럼 명랑해진다. 반대로 속상했던 기억을 누군가 얘기하면 모두 다 자기 기억을 끄집어내며 침울해진다. 어떤 이는 좋은 기억과 앞으로의 희망을 얘기하다가도 되돌이표를 만난 듯 속상했던 기억으로 기어코 돌아가버리곤 한다. 모두는 그의 슬픔과 우울에 공감하고 저마다의 표정으로 깊이 위로해준다. 분노에 공감할 때에도 대체로 점잖게 위로한다. 나는 내 아들과 다하지 못한 대화를 이들과 나누기도 하고, 내 아들에게서 미처 듣지 못한 이야기를 이들에게서 듣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든다.

 

이들은 서로에게 무척 예의바르다. 상대를 존중하고 어떻게든 이해하려고 애쓴다. 결국 이해가 되지 않아도 상대를 비난하거나 고치려고 들지 않고 낮은 소리로 “00, 잠깐만 기다려주실래요?”라고 말한다. 극도로 절제된 이 태도는, 바로 그들이 남들에게서 받고 싶었던 대접, 보고 싶었던 태도이리라. 이들은 남이 내게 하는 행동 중에서 서두르는 것, 재촉하는 것이 가장 싫었다고 말했다. 그래서 그들을 보고 있으면, 자신들은 결코 동료들을 재촉하지 않으리라고 굳게 결심한 사람들 같다. 나는 화요일 오후마다 그들에게서 남을 대접하는 귀한 태도에 대해 배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피플퍼스트 동료활동가에 대한 얘기가 나왔었다. 추모식에 다녀왔다고들 했다. 한 사람이 “00 님 전화번호를 알고 있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쉽다고 했다. 왜 그렇게 생각하냐고 물었더니,
이 다음에 만나게 될 때, 00님 전화번호를 알고 있으면 거기서 전화를 걸어서 만나자고 할 수 있으니까요.” 라고 했다.

 

나는 얼결에 이 다음에, 어디서요?”라고 물었다. 그는 손을 들어 위를 가리켰다. 만나고 싶은 마음, 만나서 위로해 주고 싶은 마음이리라. 그의 세상 속에서는 인연이 버려지지 않고 늘 이어지고 있다.

 

 

이들은 정말 열심히 사는 청년들이다. 이들이 열심히 사는 것 자체가 장애운동이다. 장애에 관해 많은 생각을 쌓아가고 있으며, 내가 아니라 상대가, 내가 아니라 세상이 잘못한 부분에 대해 이미 잘 알거나 잘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좋은 이웃이 있는 사회 속에서 무언가 하고 무언가 즐기며 살고 싶은 그들은 참 멋있는 장애운동 동지들이다. 그리고 나는 이 동지들에게서 더 많은 것을 염탐해낼 작정이다.

 

- 그래서, 화요일은 참 좋은 요일이다.*

 

김종옥(전국장애인부모연대 문화예술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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