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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왁자지껄 가족 28_조미영]여행의 맛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2-10-12 조회수1,024

 

시월엔 여행 가자는 말에 모두가 박수치며 환호했다. 스터디 모임으로 휴일 하루를 공부 반 수다 반으로 만난 지 6개월 남짓, 자녀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심각하다가도 까르르 웃을 때가 많던 우리들에게 영암 23일의 여행이 그렇게 결정되었다. 제이네 외가의 별장으로 우리가 양껏 떠들어도 괜찮은 시골 마을이라 생각만으로도 들떴다. 자폐청년과 엄마들 총 8명이 함께 했다.

기차와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는 제안에 다들 흔쾌히 동의했다. 영암을 찾는 관광객이 아닌 숙소에서 쉬면서 자녀들은 그들끼리 우리는 우리끼리 편안한 시간을 갖자는 게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다. 엄마들 중 전문가 한 명이 있기에 그동안 살면서 자녀들의 노릇 하는 우리를 관찰하고 지향해야 할 것과 지양해야 할 행동들을 서로 나누는 시간이 되고자 했다.

 

 

수서역 가까이 사는 나는 아들에게 이번 여행에 대해 얘길 했다. 걸어서 역까지 간다 했더니 눈을 껌벅이며 엘리베이터 앞에서 계단으로 이동했다. 1층에서 현관 쪽으로 가는 나를 잡아끌더니 지하 주차장으로 가자고 했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며 계단으로 내려가 나를 바라보는 아들이 황당했다.

 

 

오늘은 우리 차 안 타고 수서역까지 걸어가서 기차 탈거야. 어여 올라와라!”
 

 

 

싫다는 표현을 그리 확실하게 하는 건 병원 들어가지 않겠다는 태도와 똑같았다.

 

 

기차 타면 우리 차 둘 데 없어 걸어가야 해. 잘 생각해 봐, 엄마 기다릴게.”
 

 

 

아들은 1층과 2층 계단 사이에서 나는 공동 현관 앞에서 서로 채근하지 않고 서로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다. 일찍 도착하려고 넉넉하게 시간 배정하고 나온 터라 여유가 있어 다행이었다. 20여분의 시간이 흘렀고 아들에게 가서 다시 말했다.
 

 

 

걷기 싫으면 버스 타고 가자, 더 지체하면 우리 기차 못 탄다.”
 

 

차분하게 혼잣말하듯 중얼거리고는 바로 몸을 돌려 현관으로 나왔다. 어느 새 내 뒤를 따라오는 아들이 느껴지면서 더 오래 고집 부리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에 아들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래도 우리 차 타겠다는 자신의 의견이 묵살된 것에 대한 분함으로 계속 심통난 표정과 웅얼거림이 끊이지 않았다.

 

출발부터 불협화음이 있었기에 이번 여행이 순조롭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행동에 엄마가 화난 걸 인지한 아들은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경직된 내 뒤를 따르며 불안한 표정이 역력했다.

 

일행을 만나 기차에 오르니 드디어 우리가 먼 곳으로 떠난다는 게 실감났다. 각자의 취향대로 창밖을 보거나 폰에 몰입하는 등 청년들의 모습이 매우 점잖았다. 유독 내 아들만 머리카락을 꼬며 후후 입바람을 불었다. 나의 불안감이 올라와 얼굴이 화끈거렸다. 아들 앞좌석의 승객에게 맨 뒷좌석의 나와 자리를 바꾸자고 했더니 , 자폐인가 보네라며 얼른 일어나 주었다. 자폐라는 단어를 쉽게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것이 자연스러웠다. 이게 우영우 효과구나 싶었다. 그 분의 관심은 부담스럽지 않았다. 아들이 답답해서 그래 보인다며 객실 밖으로 나가 보라고 권했는데 아들 표정이 나쁘지 않아 조금 그러다 말 것 같았다. 역시 평정심을 되찾아 잘 도착했다.

 

나주역에서 저녁을 먹고 버스를 이용하려 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택시 두 대를 불렀다. 타지에서 온 우리를 알아보고는 기사의 친절한 설명이 과했다. 대답을 줄였더니 눈치 빠른 분이라 바로 조용해졌다. 초승달의 진노랑 빛깔이 유난히 뜨거워 보였고 손 뻗으면 잡힐 듯 가까이 있었다.

아들 넷은 자폐인답게 서로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아도 함께 모여 있었고 엄마들은 한 자리에 모여 앉아 담소 나누며 자신의 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상생활에서 엄마라 잊기 쉬운, 고쳐야 할 행동들을 우리가 교재로 활용하는 책 ‘TEACCH 자폐와 더불어 사는 법의 내용을 상기하며 여행지에서의 스터디가 이어졌다. 스스로 하는 공부는 재밌으면서도 자녀들에게 적용하는 건 역시 쉽진 않다.

청년들과 전문가 엄마가 아침 준비를 하고 엄마 셋이 산책을 하면서 느낀 점은 우리 자녀들의 조력자가 적절한 지원을 한다면 지역사회 안에서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발달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사람이다. 무조건 도와주고 대신 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조력자가 필요한 것이다.

 

첫 여행으로 서로의 자녀에 대해 알았고 무엇보다 마음 맞는 엄마들 조합이라 행복한 시간이었다. 관광이 아니라 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에 초점을 둔 여행이었다. 가족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즐겁게 사는 것이 실현되어야 지역사회 안에서 이웃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여행의 맛은 달디 달았으니 다음을 또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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