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엔 여행 가자는 말에 모두가 박수치며 환호했다. 스터디 모임으로 휴일 하루를 공부 반 수다 반으로 만난 지 6개월 남짓, 자녀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심각하다가도 까르르 웃을 때가 많던 우리들에게 영암 2박3일의 여행이 그렇게 결정되었다. 제이네 외가의 별장으로 우리가 양껏 떠들어도 괜찮은 시골 마을이라 생각만으로도 들떴다. 자폐청년과 엄마들 총 8명이 함께 했다.
기차와 대중교통을 이용하자는 제안에 다들 흔쾌히 동의했다. 영암을 찾는 관광객이 아닌 숙소에서 쉬면서 자녀들은 그들끼리 우리는 우리끼리 편안한 시간을 갖자는 게 이번 여행의 목적이었다. 엄마들 중 전문가 한 명이 있기에 그동안 살면서 자녀들의 ‘종’ 노릇 하는 우리를 관찰하고 지향해야 할 것과 지양해야 할 행동들을 서로 나누는 시간이 되고자 했다.
차분하게 혼잣말하듯 중얼거리고는 바로 몸을 돌려 현관으로 나왔다. 어느 새 내 뒤를 따라오는 아들이 느껴지면서 더 오래 고집 부리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에 아들이 고맙게 느껴졌다. 그래도 우리 차 타겠다는 자신의 의견이 묵살된 것에 대한 분함으로 계속 심통난 표정과 웅얼거림이 끊이지 않았다.
출발부터 불협화음이 있었기에 이번 여행이 순조롭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의 행동에 엄마가 화난 걸 인지한 아들은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경직된 내 뒤를 따르며 불안한 표정이 역력했다.
나주역에서 저녁을 먹고 버스를 이용하려 했으나 시간이 맞지 않아 택시 두 대를 불렀다. 타지에서 온 우리를 알아보고는 기사의 친절한 설명이 과했다. 대답을 줄였더니 눈치 빠른 분이라 바로 조용해졌다. 초승달의 진노랑 빛깔이 유난히 뜨거워 보였고 손 뻗으면 잡힐 듯 가까이 있었다.
아들 넷은 자폐인답게 서로 의식하지 않는 것 같아도 함께 모여 있었고 엄마들은 한 자리에 모여 앉아 담소 나누며 자신의 아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일상생활에서 엄마라 잊기 쉬운, 고쳐야 할 행동들을 우리가 교재로 활용하는 책 ‘TEACCH 자폐와 더불어 사는 법’의 내용을 상기하며 여행지에서의 스터디가 이어졌다. 스스로 하는 공부는 재밌으면서도 자녀들에게 적용하는 건 역시 쉽진 않다.
청년들과 전문가 엄마가 아침 준비를 하고 엄마 셋이 산책을 하면서 느낀 점은 우리 자녀들의 조력자가 적절한 지원을 한다면 지역사회 안에서 충분히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발달장애인들에게 필요한 가장 중요한 자원은 사람이다. 무조건 도와주고 대신 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는 조력자가 필요한 것이다.
첫 여행으로 서로의 자녀에 대해 알았고 무엇보다 마음 맞는 엄마들 조합이라 행복한 시간이었다. 관광이 아니라 집에서 어떻게 지내는지에 초점을 둔 여행이었다. ‘가족과 함께 평범한 일상을 즐겁게 사는 것’이 실현되어야 지역사회 안에서 이웃과 더불어 평화롭게 살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여행의 맛은 달디 달았으니 다음을 또 기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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