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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새벽까페 15_김종옥] 52 헤르츠 고래 이야기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2-11-02 조회수929

얼마 전 서울 한 구청에서 발달장애에 관한 이해교육을 하게 되었다. 공무원들이 봉사활동을 나가기 전에 사전교육으로 요청한 것인데, 이런 경우가 흔치 않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미리 알고 가겠다는 건, 봉사활동을 건성으로 하지 않겠다는 뜻이니 말이다.

그런데 교육 장소에 가는 전철 안에서 문득 고래를 보았다. 이렇게 말하면, 이 무슨 우영우 같은 소리인가 하겠지만, 전철 출입문 위 화면에서 느긋하게 유영하는 고래를 봤다는 말이다. 교육방송의 지식채널e’에 나왔던 한 장면이었는데,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 52 헤르츠 고래이야기였다. 갈아타느라 한 정거장을 걸치는 바람에 지켜보지 못하고 제목만 기억하고 내렸는데, 발달장애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는 날 아침에 마주친 우연이 무척 반갑기도 해서 이동하는 동안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았다.

 

 

-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 52헤르츠 고래

 

52헤르츠 고래(52-Hertz Whale, 속칭 52 Blue)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로 알려져 있다. 이 고래는 냉전 말기였던 1989, 미국 해군이 소련의 잠수함 탐지 목적으로 만든 수중음향감시체계(SOSUS)에 처음으로 포착되었고 이후 여러 지역에서 정기적으로 관찰되었는데, 미국 해군은 고래가 내는 음향주파수인 52헤르츠에서 착안해 고래의 이름을 ‘52헤르츠라고 불렀다. (사실 이 고래는 미확인된 종의 고래로 추정되는 무언가라고 하는 것이 정확하다. 울음소리를 수중청음기Hyhone로 들은 사례가 전부이며 실물을 발견한 적은 없다고 한다.)

고래는 보통 12~25헤르츠 사이의 주파수로 의사소통을 하고, 대왕고래는 30헤르츠 주파수로 의사소통을 하는데 이 고래는 52헤르츠, 정확히는 51.75헤르츠의 고음으로 운다. 다른 고래들과 의사소통이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해군은 이 음역대의 소리를 내는 다른 고래가 있는지 조사했는데 오직 한 개체의 소리만 포착이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52헤르츠 고래를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고래라고 부른다.

 

52헤르츠 고래 이야기는 그림책으로, 노랫말로, 다큐멘터리 영화로, 소설로 쓰였다. 우리나라에서는 방탄소년단의 곡 ‘Whalien 52’의 노랫말이 이 고래 이야기이고,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의 핸드폰 뒷자리 번호가 이 고래를 상징하는 5252라고 한다. 고래와 외계인의 합성어라는 ‘Whalien 52’ 노랫말은 이렇다.(일부)

 

이 넓은 바다 그 한가운데 / 한 마리 고래가 나즈막히 외롭게 말을 해 / 아무리 소리쳐도 닿지 않는 게 / 사무치게 외로워 조용히 입 다무네 ......

Lonely lonely lonely Whale

이렇게 혼자 노래불러 / 외딴 섬 같은 나도 / 밝게 빛날 수 있을까

이렇게 또 한 번 불러봐 / 대답 없는 이 노래가 / 내일에 닿을 때까지

끝없는 무전 하나 / 언젠가 닿을 거야 / 저기 지구 반대편까지 다 ......(생략)

 

고래들의 울음은 넓고 깊은 바다 속을 울리며 나아가며 지구 반대편에 있는 동족에게까지 닿는다고 알려져 있으니, 어떤 고래든 소리를 내면 지구 어디에 있든 누군가 그 소리를 듣는 고래가 틀림없이 있기 마련이다. 반드시 가닿는 소리를 내는 고래들의 노래는 신비롭고 아름답다.

그런데 그 누구에게도 포착될 수 없는 주파수로 노래하는 고래라니, 그 고래가 깊고 푸른 바닷속을 천천히 유영하며 지구 반대편에라도 혹시나 있을지 모를 동족에게 보내는 혼자만의 노래를 부른다니, 이 외톨이 고래의 외로움은 얼마나 깊고 푸른가.

52헤르츠 고래의 외로움은 세상의 외톨이들에게 감정이입의 대상이 되고 있고, 그 외로운 자기만의 노래는 소통의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전철을 내릴 때쯤 52헤르츠 고래의 먹먹한 외로움의 이야기로 오늘 강의를 시작하려고 마음먹었다.

 

그런데 서둘러 가다보니 좀 이른 시간에 강의 장소에 도착하는 바람에 52헤르츠 고래 이야기를 좀더 찾아볼 시간이 되었는데, 뜻밖에도 먹먹함을 넘어서는 이야기들이 이어서 눈에 띄었다.

 

- 세상에서 가장 외롭지는 않을지도 모르는 52헤르츠 고래

 

두 번째 52헤르츠 고래에 대한 기록이나, 동시에 여러 지역에서, 또는 여러 차례 비슷한 신호에 대한 보고가 있었다는 기록도 있고, 1992년 이후 고래 울음소리의 주파수가 약간 낮아졌다는 보고(고래가 성장, 성숙해서 그런 것으로 보인다는 보고)도 있었다. 북쪽으로 알류샨 열도와 코디액 군도에서 남쪽으로 캘리포니아주 해안까지 이동한다는 보고, 이동거리에 관한 기록도 있었다.

인상적인 것은 어떤 해양학 과학자들의 견해인데, 이 고래가 선천성 장애를 가졌을지 모른다고 추측하기도 하지만, 어찌되었든 이 고래는 혼자만의 울음소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잘 살고 있다는 얘기다. 다큐멘터리 가장 외로운 고래: 52를 찾아서’(2021, 감독 조지 지먼)에서는, 이 고래가 대왕고래의 이동경로와 함께 다니고 있는 것을 근거로, 소통할 수 있는 주파수는 다르지만 무리안에서 지내고 있다는 추정을 하기도 한다.

 

52헤르츠의 울음소리가 한 마리 이상 발견되었든, 또는 아직도 유일한 한 마리가 소통의 어려움은 있겠지만 무리안에서 살고 있든, 어쨌든 52헤르츠 고래가 더 이상 외톨이가 아닐 수 있다는 소식을 보고 있자니, 마치 드라마 속에서 어떤 순간 우영우의 머리 위로 반짝이는 고래들이 폭죽처럼 빛나며 유영하듯, 내 머리 속으로도 더 이상 외롭지 않은 52헤르츠 고래가 묵직하니 헤엄을 쳤다.

 

이 아름답고 기쁜 이야기를 알리며 강의를 시작했다. 좋은 날이었다.

 

(2022.11.02.)

 

(* 참고 : 위키백과, 이데일리 2022.07.14. 기사 우영우와 BTS에 담긴 52헤르츠 고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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