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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왁자지껄 가족 29_조미영] 티 나면 어때!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2-11-18 조회수1,026

안동 봉정사 매표소 앞, 아들의 복지카드와 내 신분증을 보여줬다. 직원이 앉은 채로 힐끗 아들을 바라보더니 벌떡 일어나 다리를 훑어보았다. 그분은 발달장애에 대해 잘 모르고 신체장애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진이가 장애인 같지 않았나 봐, 하하하...”
 

일주문이 보일 때까지 곱게 물든 단풍을 보며 나는 크게 웃었다.
 

그러게, 저렇게 대놓고 스캔하는 건 또 처음이네.”
 

가족들도 짧게 웃으며 가을 속으로 들어갔다.

 

20대 자폐인 아들은 가끔 야무지게 입 다물고 있으면 평범한 청년으로 보인다. 어렸을 때는 티 나지 않는 외모로 오해도 많이 받았다.자식을 버릇없이 키운다느니 무슨 애가 저렇게 산만하냐는 등 어른들의 호된 말을 많이 들었다. 울기는 또 왜 그렇게 많이 울었는지 땅바닥에 드러누워 사지 흔들며 발버둥 칠 때는 정말 난감했다.

외모에 대해 별 관심 없는 아들이 묘한 표정을 지을 때면 보는 사람들이 왜 저래?’하며 힐끔거리지만 정작 본인은 얼굴 찡그리는 놀이를 하는 것 같았다. 자연스럽게 이름을 불러 표정이 바뀌도록 했지만 나도 궁금하다, 그럴 땐 무슨 생각을 하는 지.

수용언어에 비해 표현언어가 서툴다 보니 무엇을 원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하면 탠트럼(분노 표출)으로 답답함을 호소했다. 사람들의 힐끗거림이 불편해서 외출이 두렵던 시절이었지만 숨어 살 순 없었기에 많이 나돌아 다녔다.

한적한 곳에서는 행복한 표정으로 잘 걷고 뛰어 다녔지만 사람 많은 곳에서는 뭐가 불만인지 자주 떼를 쓰고 울었다. 사람들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가 있나 생각해 봐도 수긍할 만한 이유를 알지 못했다.

자주 경험하다 보니 원인은 내게 있음을 알았다. 아들의 장애가 보이지 않게 하려고 알게 모르게 나는 아들을 강하게 통제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이상한 소리를 내면 입을 막았고 두 손을 허공에 대고 흔들면 잡아서 멈추게 했다.

한적한 곳에서 허용하던 것들을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해 억제하니 아들은 엄마의 통제를 힘들어 하고 있었다. 내가 견뎌야 할 타인의 시선만 생각하고 아들에 대한 생각은 전혀 없던 시절이었다.

주 양육자인 내가 먼저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알았고 실행해 나갔다. 떼쓰고 우는 행동이 과할 때 양해를 구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웃으며 신경 쓰지 말라고 했다. 아들에게 집착하면서 같이 흥분하고 그만하라 다그칠 때보다 빈도와 강도가 줄어들고 약해졌다. 주위 사람들에게 요청한 나의 말 한마디에 생각보다 사람들의 반응은 꽤 너그러웠다.

 

태어날 때는 몰랐던 자폐와 달리 다운증후군 엄마는 어딜 가도 장애가 먼저 보이니 대놓고 바라보는 게 너무 싫다고 했다. 멀쩡하게 생긴 아이가 눈에 띄는 행동하면 뒤늦게 검지 손가락을 허공에 대고 동그라미 그리는 사람이 나는 미웠다. ‘난 사람들이 바로 알아보니 차라리 더 낫다는 말을 주고받던 어린 시절 엄마들이 떠오른다. 이래저래 아이 어렸을 때의 젊은 엄마들은 자녀들의 장애를 부정하고 싶었고 힘들었다. 자녀 양육보다 우릴 바라보는 따가운 시선에 더 신경 쓰느라 마음고생이 심했다. 우린 늘 총 맞으며 살아간다고 씁쓸해 했다. 사람들의 눈총’.

많이 익숙해졌지만 아직도 누군가의 반응에 웃거나 서운하기도 한 걸 보면 아들의 장애를 온전히 수용하는 게 내게는 영원한 숙제인 것 같다.

 

장애인 같지 않아요라는 말에 반색하고 내 눈에도 의젓해 보이는 아들을 흡족해 할 때면 딸이 말한다.
 

엄마 기분 나쁘라고 하는 말은 아닌데 그런 말 자체에 당신 아들 장애인이란 게 내포되어 있는 거야. 엄마 눈에 멋진 아들이지만 누가 봐도 장애는 보여, 뭐 어때? 내 동생은 그냥 내 동생이지.”

어허이, 티 나면 어떻고 안 나면 어떻노? 이래도 저래도 우리 아들인데!”

남편도 거들면서 나를 나무라듯 한 마디 던진다. 두 사람 말을 수긍하면서도 가끔 아들을 보는 시선에 내 기분이 달라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살면서 타인의 말이나 행동에 가볍게 기분 좋거나 나쁠 수 있는 그런 사소한 감정이라 생각한다.

어찌 보면 아들에게 가장 많이 매달렸던 나와 달리 남편이나 딸은 자식과 동생이라는 혈연에 대한 생각이 나와 좀 다른 것 같다. 덜 집착하거나 있는 그대로를 보려는 마음의 눈이 나보다는 한 수 위라는 생각이 든다. ‘뭐 어때?’하는 표정들을 보면 나도 아들에 대해 좀 더 객관적이고 너그러워야겠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님을 알면서도 행동과 외모에 신경 쓰며 살다보니 아들이 겪었을 통제와 억압이 많이 미안하다. 그러면서도 늘 만삭인 배를 보며 한숨 쉬는 것은 비만이 건강의 적이라고 포장된 말을 하면서도 입을 옷 사는 게 힘들고 옷태가 나지 않는다는 속내를 감추고 산다.

자해를 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크게 웃거나 울던 시절엔 거기에 매몰되어 다른 건 잊고 살았다. 힘들었을 때를 생각하며 지금 보이는 것이 내 맘에 들지 않아도 건강한 하루를 잘 살아내고 있는 아들을 고맙게 생각해야겠다.

 

내년엔 봄 봉정사의 풍경을 보러가야겠다. 아들을 뚫어져라 보던 그 직원의 어떤 반응에도 나는 무심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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