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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왁자지껄 가족 30_조미영] 한 해의 끝에서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2-12-19 조회수775

 



하진아, 엄마야. 문 열어 줘.”
 

 

 

거제로 이사한 언니네 집에서 나는 함께 모인 자매들과 수다 떨며 놀다가 잠이 들었고 남편과 아들은 근처 숙소에서 밤을 보냈다. 아침밥을 같이 먹으려고 부자 데리러 숙소로 갔다. 벨을 눌렀으나 아무 기척이 없었다. 한 번 더 누르니까 아들인 듯 발소리가 들렸다. 문틈으로 아들을 불렀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가 생각나 웃음이 나왔다. 집에서는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던 초인종 소리에 문 여는 일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며 한 번 더 아들을 불렀다. 저벅저벅 발소리가 가까워지더니 아들은 문을 열고 활짝 웃었다.
 

 

 

오올, 하진이 덕분에 엄마 들어왔네. 고마워.”
 

 

 

호들갑 떠는 소리에 놀란 남편이 일어났다.
 

 

 

언제 들어 왔노? 문은 우째 열고?”
 

 

게슴츠레한 눈으로 남편이 물었고 아들이 문 열어 줬다는 내 대답을 멀리 소파에 앉아 듣던 아들은 잘난 척하는 표정으로 우릴 바라보았다.

 


하진이가 엄마 언제 오는 지 목 빼고 기다린 거 아나?”
 

 

남편의 너스레에 아들과 나는 눈 맞추며 웃었다.

 

남들은 자연스럽게 배우는 일상을 아들은 본인이 하고 싶거나 무심한 척 보고 습득하는 자폐인이다. 집을 떠나 다른 곳에서 보이는 아들의 행동을 나는 유심히 살피는 편이다. 그러다보니 가끔은 내 시선을 너무 신경 쓰는 것 같아 안 보는 척 하지만 눈치 빠른 아들은 그걸 놓치지 않는다. 그렇게 서로를 의식하며 살아온 모자 관계가 조금씩 달라지는 걸 느꼈다.

코로나로 외부 활동이 멈춘 시기에 나는 아들을 데리고 인적 없는 곳으로 많이 다녔다. 아들의 어떤 행동도 외면하려고 애썼다. 워낙 겁이 많아 위험한 일은 하지 않아 다행이었고 손이나 몸을 앞뒤로 흔드는 상동행동은 말리지 않았다. 예전에 사람 많은 곳에서는 우릴 바라보는 남들의 이상한 시선이 싫어서 못하게 막았다. 그러면 아들은 더 심하게 하거나 소릴 지르며 뛰어다녀서 난감했다. 보는 눈이 없는 곳에서는 우선 내 마음이 편했고 아들은 본인이 어쩔 수 없는 상동행동을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스트레스를 덜 받는 것 같았다.

그렇게 서로 편한 외출이 잦다 보니 아들에게서 눈을 뗄 수가 있었다. 아들은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엄마의 눈이 다른 곳에 머무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상동행동의 강도와 횟수가 낮아지고 줄었다.

말로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 못하는 아들의 눈은 많은 것을 읽어내게 한다. 그것을 읽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만 아들의 삶이 좀 더 행복하려면 그 눈빛에 조금만 관심을 기울여도 소통 가능함을 주변인들은 잘 안다. 눈맞춤을 어려워하는 자폐인이 있지만 눈으로 말하려는 아들같은 자폐인도 있다.

 

한해의 끄트머리다. 여느 해와 달리 올해 아들은 그동안 보여 주지 않았던 모습을 많이 보여 주었다. 어쩌면 꼭꼭 숨기고 있던 것들을 이제야 보여주는 것일 수도 있고 자신도 모르게 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유아적 질문이라고 못하게 말려도 장난삼아 하는 남편의 아빠가 좋아? 비가 좋아?’라는 질문에 아들은 귀찮은 듯 아바!’라고 답한다. 유일하게 또렷이 발음하는 단어가 라서 남편은 자신과 비를 동일선상에 놓고 있다.

휴일 점심, 아들이 국수를 다 먹고는 누구한테 좀 얻어먹을까 둘러보다가 양이 많이 남아있는 누나에게 빈 그릇을 내밀었다.먹고 싶은 만큼 가져가라는 누나의 말에 조금 덜어 와서는 맛있게 먹었다. 갑자기 남편이 아빠가 좋아, 누나가 좋아?’라고 물었더니 어설픈 발음으로 누우나 하던 바람에 우린 또 까르르 웃음꽃을 피웠다.

원형 식탁에서 음식 차리는 분에게 걸리적거릴까봐 스스로 의자를 뒤로 빼서 잠시 기다리더니 셋팅 끝나자 의자를 당겨 바로 앉는 일은 생각지도 못했다. 시켜도 멀뚱멀뚱 바라만 보던 때가 엊그제였기에.

머리를 감고 드라이기를 직접 사용하다니, 이발 후 미용사가 드라이기 대는 것조차 못 견뎌 가만있지 못하던 아들이었기에 점점 사람 꼴 난다며 아들 덕에 많이 웃은 한 해였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지만 사회적 약자들이 사는 세상의 속도는 여전히 느리고 더디다. 아들도 자신만의 치열한 노력으로 느리지만 20대 중반의 시간들을 그냥 보내고 있지는 않아 보인다. 나쁜 행동이 고착되고 잘 하던 일들이 퇴행하는 것 같아도 여전히 아들과 아들을 지원하는 주변인들은 애쓰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다. 우리의 노력이 모두의 행복으로 다가갈 수 있는 세상, 갈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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