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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새벽까페 17_김종옥] 올해를 보내며 -2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2-12-26 조회수637

수다를 떨다

 

나에게 올해는 대체로 우울했지만 한결같이 참담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여느 해보다 미소며 웃음소리의 총량이 줄었었고, 찌푸리고 핏대 올리고 한숨 쉬고 했던 시간이 많았던 것은 틀림없다. 마음의 무게를 그래프로 그려놓는다면 대체로 평정심의 기준선 아래에서만 선이 그어질 터이다. 그럼에도 일주일에 하루씩은 분명하게 마음을 끌어올려주는 시간이 있었다.

특별하고 귀한 시간이었다. 지난 6월부터 발달장애를 가진 청년들과 글쓰기 수업을 함께 했다. 예전에 마을공동체방송국에서 인터뷰 프로그램을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 때 두어 번 발달장애를 가진 청년들과도 인터뷰를 할 일이 있었다. 그 때 그 청년들이 뭔가 맘껏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하는 걸 봤다. 수줍고 자신없어하는 표정으로 내내 입을 꼭 다물었던 이가 있었는데, 남들이 저마다 얘기하는 것을 보고는 인터뷰 시간 말미에 가자 막혔던 말이 서둘러 나오기도 했다. 그런 기억이 선뜻 글쓰기 수업 제안을 받게 한 이유가 됐다.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은 대화를 하고 싶으나 많은 경우 스스로 포기하고 만다. 당장 내 아들만 봐도 그랬다. 다섯 살에 처음 의미있는 음절을 내기 시작했지만, 그래서 제 때 근육운동이 되지 않은 발음기관이 어눌하지만(서른이 된 지금까지도 여전해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외국서 살다 오셨어요?’라고 묻기 일쑤다.), 일단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는 일방적인 자기 주제를 주저리주저리 끝도 없이 얘기했었다. 그러다 해가 갈수록 말수가 줄더니 지금은 매우 과묵한 청년이 되었다.

상대의 말을 온전히 다 이해하지 못할 때, 상대가 내 말을 이해해 주지 못할 때, 서로 하는 말이 서로 흥미 없을 때, 대화란 얼마나 어렵고 고단한 일인가. 상대가 내 말을 미처 못 알아들은 채로 서둘러 끝내려고 건성으로 대답하는 것도 느끼고, 내가 못 알아들었을 때 알아들을 수 있게 성의 있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도 느낀다. 대화란 모름지기 부드럽고 말랑말랑하고 죽죽 늘어나는 인절미 같아야 하는데, 고집스레 단단한 고무같이 느껴질 뿐이다. 그래서 아들은 말수가 줄었다. 그나마 대화에 알량한 성의를 보이는 엄마와도 대화의 폭은 날로 줄어갔던 것 같다.

 

그런데 아들은 몇 년째 블로그에 매우 분량이 긴 글을 올린다. 주제는 낯선 분야라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그 글의 표현만큼은 상냥하고 의젓하고 친절해서 상대를 앞에 앉혀두고 조곤조곤 이야기해 주는 투이다.(심지어 한껏 노오오오력했음이 분명한 유모어까지 곳곳에 심어놓으셨다!) 나는 그 글들을 읽으며 미안하고 부끄럽다. 대화를 건성으로 보낸다는 것을 아들에게 몇 번이나 들켰을까.

 

우리가 누구나 이야기를 나눌 상대가 필요하다. 고양이, , 화분, 인형, 로봇일지라도 무언가 얘기하고, 그것들에게서 분명한 반응을 듣는다(고 믿는다). 내 마음과 기분 털어놓기를 포기한 이들의 세상에는 미세먼지같이 만연한 우울이 있다. 그러니 우리는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과 더 많은 대화를 하기 위해 더 많은 시간 노력해야 한다. 소통하기 쉬운 말들의 통로를 찾아서 함께 앉아서 한 마디 한 마디를 발견해내듯 이야기를 시작해야 한다. 어미부터 그리 하지 않으면 아이는 누구와 다정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까.

이런 이유로 나는 내 아들과 엇비슷한 나이 또래의 발달장애를 가진 청년들과 즐거운 수다시간, 진지한 글쓰기 수업을 갖게 되었고, 지난 몇 달 동안 참으로 귀한 시간을 보냈다.

 

몹시 기품있는 청년들

 

첫 시간부터 그들은 매우 상냥하고 친절했다. 기대와 호기심도 가득했다. 수업의 주제가 나를 표현하는 글쓰기이니 이 시간에는 오직 나 자신에 집중해서 내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한다고 엄숙하게 선포하고 시작했는데, 어려워하거나 싫은 내색이 없었다. 마치 준비하고 기다려왔던 일을 대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처음부터 몇 가지 원칙을 정하고 시작했다. 말을 많이 하자, 말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나 말하자, 혼자서만 말하지 말자, 남이 말할 때는 들으며 기다리자, 모든 것은 상의해서 정하자. 이에 따라 첫 시간에 우리가 한 일은, 제일 처음 자기 소개하는 인사말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한다면 누구부터 할 것인가, 앉은 자리 순서로 할 것인가, 나이 순서로 할 것인가, 이름의 가나다 순서로 할 것인가, 하고 싶은 사람이 먼저 손드는 순서로 할 것인가를 상의했다. 합의가 안 될 때는 거수로 할 것인가, 자기 의견을 양보할 것인가도 상의했다. 물론 재미삼아 더 시시콜콜한 것까지 상의하고 정하고 했던 것이지만, 기대보다도 더 즐거운 분위기가 만들어져서 첫 시간, 첫 대면의 부담이 가볍게 날아갔다.

 

무엇보다 첫 시간에 내가 깊이 감명 받은 것은, 이 청년들이 매우 좋은 태도, 좋은 매너를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상대를 으로 부르는 것, 모두에게 존대하는 것, 상대가 말을 마칠 때까지 기다려 주는 것, 상대 말에 그렇군요라고 공감해 주는 것 등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모습이 한결같았다. 아마도 오랜 시간 서로 노력해서 몸에 밴 약속인듯 했다. 20대 초반에서 30대 초반에 이르는 나이 폭을 가진 이 청년들은, 그래서 그 나이에 맞는 기품 있는 태도를 유지하려고 노력한 결과 실제로 그래 보였다.

나는 이 기품 있는 청년들과 함께 일주일에 두 시간씩 수다를 떨며, 그들 삶의 기품 있는 시간을 함께 하는 영광을 누리고 있는 중이다.

 

수다의 기록 1

 

- ‘맘에 걸린다

무슨 말 끝에 맘에 걸린다는 얘길 했다. A(A,B,C는 특정인이 아니라 대화의 순서대로 붙임) 맘에 걸린다는 게 무엇일까 물었다. 청년들은, 생각이 사라지지 않고 자꾸 떠오르는 것이라는 훌륭한 정의를 내렸다. 맘에 걸리는 생각이 무엇이 있는가 물었더니, B학교 다닐 때 아토피가 있던 친구가 있어서 도와주고 싶었는데 못 도와준 것이 맘에 걸린다고 했다.

C, “지하철에 가면 시가 붙어있어요. 시를 보는데 마음에 걸렸습니다.”라고 했다. 시의 내용이 마음에 걸렸냐고 물으니, 그게 아니란다.

나도 시를 쓰고 싶은데 못 쓰고 사진만 찍었습니다.”라고 했다. 그 시를 낭독해 달라 했더니, ‘풀잎처럼이라는 제목의 시를 낭독했다.

그 시가 왜 좋아요?”

C의 대답은, “시가 귀여워요.”였다.

C는 우리 글쓰기반의 두 시인 가운데 한 명이다. 둘은 글쓰기 시간에 시를 척척 써냈다. C는 산, 바다, , 자전거, 별에 대한 시를 썼고, 다른 한 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여러 견종에 대한 시를 시리즈로 썼다. 나는 이들 마음 속에 가득한 시심(詩心)에 매번 마음이 울렁인다. 그러면서 내가 산문을 쓰는 사람인지라 시를 이끌 재주가 부족한 것이 몹시 맘에 걸린다’.

 

- 텔레비전에 내가 나온다면

글쓰기팀은 영화 니얼굴을 보고와서는 기분들이 좋았다. ‘니얼굴은 발달장애를 가진 화가이자 이제는 연기자까지 된 정은혜 씨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영화다. 영화를 보니 어땠냐고 물으니 D가 답한다.

좋았어요. 아는 사람이 나와서 기분이 좋았습니다. 꼭 만나고 싶어요, 저는 팬이에요.”

그런데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본 이가 없다. 드라마에는 크게 관심이 없는가 보다. 그래도 화제가 된 것은 알고 있는 이들이 몇몇 있었다.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이 나오는 드라마나 영화가 많이 알려지니 어떤 기분이 드는지 물었더니 이런 대답들이 나온다.

드라마나 영화에 우리 발달장애 활동가들이 나오니까, 기분이 좋아져요. 사람들이 보고 좋아하니까 나도 좋아요.”

나도 내가 나오는 다큐를 찍고 싶습니다.”

나는 영화, 나는 드라마도 찍고 싶습니다.”

 

- 응원을 보낸다, We will Rock you!

한번은 E, 공연을 앞두고 잘 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어 많이 떨린다고 했다. 정말로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잘 할 거라고 다독이니 너도나도 잘 될 거에요!”를 외친다. 이때 가만히 있던 F가 갑자기 책상을 쿵, 쿵 두드렸다. 그러고는 이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 , ! , , !) We will, We will Rock you!

자기 위기는 콘서트! 다같이 신나게 발을 구르고 책상을 두드리며 We will Rock you!를 외쳤다. 한참을 그러고 나서 E에게 이제 기분이 어떠냐고 물었다.

“...., 아직도 떨려요.”

그러자 다시 FWe will Rock you!를 외쳤다. 다시 한 번 롹콘서트. E에게 어떠냐고 물었다.

"아직도 좀 떨립니다.“

다시 다같이 We will Rock you! E가 외쳤다.

이제 그만! 잘 할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배꼽을 잡았다.

 

수다의 기록 2

 

-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대체로 어떤 주제든 기분 좋은 얘기로 시작하려고, 좋아하는 느낌들, 좋았던 기억을 얘기할 때가 많다. 그런데 얘기를 하다보면 이내 나빴던 기억, 싫어하는 것들로 옮겨가기 일쑤다. 좋았던 것, 좋아하는 것들보다 나빴던 것에 대한 기억이나 느낌이 더욱 자세하다. 나도 그런가 하고 생각을 해보았는데, 그건 잘 모르겠다. 나는 나빴던 기억이나 싫어하는 것들의 목록은 조금씩 꺼내서 각자 마음의 손길로 툭툭 건드리고 슬슬 쓸어주었으면 하고 바랐다. 햇볕과 바람에 말리는 건어물들처럼, 널어놓은 목록들의 생채기가 무뎌질 지도 모른다는 기대로. 그런데 귀퉁이마다 부서져 나오는 그 목록들은 굴러 떨어지면서 마음 벽을 긁었다.

 

한 번은 G가 좀 우울해 보였다. 왜 그러냐 했더니 예전에 기분 나빴던 기억이 떠올랐다. 했다. 말이 나온 김에, 기분 나빴던 일을 얘기하고 서로 위로해보자 했다.

차렷 열중쉬어를 계속 시켰어요.”

혼내면서 가르치는 거 싫어요.”

욕하면서 가르치는 거 싫어요.”

집에서 방문 열어놓으라고 잔소리하는 거 싫어요.”

사람 툭툭 치면서 그만하라고 할 때 기분 나쁩니다.”

애들이 내 새 신발을 계속 밟았어요. 빵셔틀도 시키고요.”

자꾸 돈 갚으라고 했어요.”

......

H는 학교 다닐 때 같은 반 애들이 왕따를 시켰단다. 수학을 몰라 물어보니 무시하고 왕따를 시켰다. I가 물었다. “근데, 왕따가 뭐에요?” H가 간결하게 대답했다. “혼자 노는 거에요.” 아무도 말 걸어주지 않고 아무도 놀이에 끼어주지 않는 것, 왕따.

 

J는 이런 기억을 떠올렸다.

초등학생 때 급식시간에 친구들이 내가 음식 먹는 모습이 꼴보기 싫다고 판자로 앞을 가렸어요.”

J의 표정이 슬펐다. 다들 화가 났다. 누군가 지금이라도 그때 그 애들한테 욕해보라고 했다.(파이팅~!) J는 슬픈 얼굴로 웃으며 친구들인데 어떻게 욕을 해요.”라고 대답했다. 나는 그 때 친구들이 이제 잘못을 깨닫고 사과를 해온다면 어떻게 할래요, 라고 물었다가 대답을 듣고는 아연실색했다. 대답은, “나도 사과할래요.”였다. 뭘 잘못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대가 사과를 해올 때는 나도 사과해주는 게 좋은 거란다. J는 그때부터 내 마음 속에서 천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나는 J가 즐거운 기억이 많은 천사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 설레지 않는다

K는 장애와 인권에 대해 매우 많은 생각을 했고, 그 생각들이 잘 정리되어 있어서 대화를 하면서 배우는 것이 많은 활동가이다. 어느 날 그가 사람을 사귀는 일에 대해 했던 말들은 마음이 아렸다. 그는 나는 포기와 체념을 습득하고 살아갑니다. 누군가 좋아하고 설레는 마음이 들까봐, 그런 마음이 들지 않게 합니다. 어떤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자기 선택대로 살아가는데 나는 그러지 못하게 살겠구나 하는 마음에 기분이 나빠집니다. 또 장애를 인정해주고 다름을 인정하고 배려하려는 사람이 별로 없어서, 어떤 사람이든 나의 장애에 거리를 둘 거고 그러다 결국에는 멀어질 것이라 누군가를 보아도 설레지 않습니다.’

쉽게 포기하거나, 포기하지 않아도 될지 잘 몰라서 포기하거나, 포기하지 못할 것을 포기해서 못내 마음이 쓰리고 아쉽거나, 끝내 포기하지 못해 슬프거나. 발달장애를 가진 이들은 하루에도 수도 없는 순간 무언가를 포기하며 살고 있다. 나는 이들이 포기하고 만 목록보다 자신들이 좋아하는 것의 목록이 점점 더 길어지기를 바란다. 포기했던 것을 찾아내어 끝내 이룬 행복한 목록이 점점 더 확장되기를 바란다.

 

- 우리 세상은

우리 중 L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들의 최다기록보유자인데, 그는 작은 글씨로 꼼꼼하게 자기가 좋아하는 목록을 적기 시작해서 글쓰기 시간마다 목록을 보태나갔다. 좋아하는 음식, 좋아하는 장소, 좋아하는 일들이 A4 두 장을 빼꼭하게 채우고도 넘쳤다. 그 덕에 우리는 L이 좋아하는 것들을 굉장히 많이 알게 됐고, 어쩌다 그 음식, 그 장소를 보게 되면 L을 떠올린다.

모두에게 좋았던 시간, 좋았던 기억의 목록이 열 장, 백 장을 넘어 한권의 책, 칸막이가 많은 책장을 채우길 바란다. 우리 세상은 그것을 위해 있는 거다. (202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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