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가기 메뉴
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보다칼럼

[왁자지껄 가족 32_조미영]독립을 꿈꾸며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02-22 조회수820



마땅한 장소가 없어 게스트하우스를 예약하고 들뜬 마음으로 그날을 기다렸다
. 젊은이들이 한다는 파자마 파티를 위해 똑같이 생긴 싸구려 원피스와 촌스러워 보이는 꽃무늬 손수건도 주문했다. 주먹밥과 샌드위치, 과일, 와인에 주전부리까지 각자 맡은 것들을 준비하는 과정도 즐거웠다.

매월 한 번씩 만나는 8명의 지인들, 봉사단체에서 만난 아름다운 인연이 14년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은 독서모임’, 이번 달은 푸드 테라피를 한다. 각자 돌아가면서 자신의 취향대로 모임을 이끌어 가는데 다들 재주가 많아 늘 새롭고 행복한 시간이 기대된다.

 

갑자기 남편이 그날 약속이 잡았다고 했다. 내가 미리 말했는데도 지방에서 오는 거래처 사장의 일정에 맞추다보니 어쩔 수 없다고 했다. 내 모임보다 먹고사는 일이 우선이니 난감했다. 자폐인 아들을 데리고 모임에 가려니 내키지 않았다. 늙은 엄마 모임에 가는 아들도 달갑지 않을 텐데 생각하다가 아들에게 물어봤다.

하진아, 오늘 엄마 모임 있는데 아빠 없어도 혼자 집에 있을래?”

!”

짧게 대답하는 아들의 표정이 밝았다. 그런 적 거의 없는 아들이 혼집을 하고 싶었나 보다.

 

그날이 되었다. 나는 모임 도중에 아들을 데리러 나왔다. 아들에게 한 번 더 얘길하며 집에 들어섰다. 혼자 있을 아들을 생각하니 나도 아들도 살짝 긴장했다. 식탁 위의 과일을 먹으라 했더니 싱긋이 웃기만 하는 아들이 평소와 달랐다. 집에 오면 씻고 냉장고 뒤져 먹거리 찾던 녀석이 점잖게 소파에 앉아 엄마 빨리 나가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유튜브 아이돌 공연을 틀어 주고 나중에 저녁은 같이 먹자 말하고 집을 나왔다.

아들을 잊고 나는 음식으로 마음을 표현해 보는 푸드 테라피에 집중했다. 사춘기 소녀처럼 크게 웃을 일도 아닌데 누군가의 발표에 까르르 넘어가고 울컥 감동하면서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웃고 떠들면서도 내 안에 아들 생각은 없었다.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더 안심이 되었나 보다. 게스트하우스는 우리 아파트에 있는 거라 아들이 혼자 있는 모험을 실행해 볼 수 있었다.

 

저녁 먹으러 가자고 집에 들렀다. 근 두 시간동안 계속 소파에만 있었는지 평소처럼 제 방에도 가서 책도 보고 푸쉬팝도 하고 그랬는지 알 순 없었지만 느긋한 자세로 엄마를 바라보며 미소 짓는 아들이 편안해 보였다. 식탁 위의 과일도 먹지 않았다. 냉장고 그만 열라는 나의 잔소리가 없으니 그 좋은 먹성도 잠시 외출했나 보다.

우리 밥 먹으러 옆 동에 가자.”

아들은 벌떡 일어나 점퍼와 마스크를 챙겼다.

엄마 지인들에게 고갤 끄덕이며 인사하고 잘 생겼다, 피부 좋다, 듬직하다 등 쏟아지는 칭찬에 아들은 기분이 좋아 보였다. 음식도 게걸스럽게 먹지 않고 자꾸 내 손에 있는 걸 먹으려고 했다. 녀석이 체면 차리나 싶은 생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예정했던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사람 좋아하는 아들은 우리 활동을 바라보며 연신 소리없는 웃음을 보였다.

 

그동안 아들의 혼집은 일부러 시도하지 않았다. 집에서 근무하는 남편과 시간을 맞춰 늘 빈 집에 아들만 있게 하지 않고 마트나 잠시의 볼 일을 볼 때도 30분을 거의 넘기지 않고 살았다. 과거에는 집에 아들만 둔다는 건 상상도 못했다. 생각해 보면 밖으로 나가지만 않으면 문제될 게 없었는데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혼자 놔두면 큰 일 나는 줄 아는 나의 불안이 너무 컸었다. 코로나로 인해 긴 시간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아지면서 아들은 아들대로 혼자 지내는 법을 터득했다. 나는 아들을 개의치 않고 내 일을 하면서 같이 또 따로 사는 방법을 익힌 것 같다. 어쩌면 우리는 코로나라는 위기를 기회로 활용했기에 아들이 혼자 집에 있는 게 불안하지 않는 마음이 두꺼워진 게 아닌가 싶다.

 

함께 살면서 각자의 공간이 편안하고 서로 의식하지 않는 따로 사는 시간이 늘고 있다. 아들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여하며 답답해하고 잔소리하는 엄마에서 너는 너대로 나는 나대로 사는 일상이 평화롭다. 눈 한 번 질끈 감으면 되는 일인데 참으로 긴 세월이 필요했다.

다음 모임에도 혹시 남편이 일이 생긴다면 아들의 혼집시간을 늘여봐야겠다. 요원하게만 느껴졌던 아들의 독립이 한 발 가까워졌다는 생각에 가슴 뛴 날이었다. 

저작권표시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BY-NC-ND)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BY-NC-ND)

저작자와 출처 등을 표시하면 자유이용을 허락합니다. 단 영리적 이용과 2차적 저작물의 작성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총 댓글수 : 2개

전체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