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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왁자지껄 가족 33_조미영]부자가 달라졌어요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03-10 조회수781

 

여느 해와 다름없이 같이 가자는 남편을 뿌리쳤다. 몇 해 전부터 친정부모 기일은 내가 홀몸으로 움직이는 유일한 외박 여행이 되었다. 집안일에서 해방되는 게 좋고, 운전의 부담도, 누군가를 신경 써야 하는 눈치도 볼 것 없어 가장 홀가분한 자유다.

자폐인 아들을 남편에게 오롯이 맡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포기하면 내 삶이 너무 옹색해서 어느 날 머리에 꽃 달고 거리를 활보할 것 같았다. 남편이 직장인일 때는 감히 엄두를 못 냈는데 자영업으로 전환하고 집에 사무실을 꾸미고부터 가능했다. 아들을 맡기고 반나절부터 시작해서 하루로 늘렸고 이틀에서 사흘까지 이제 거리낌 없이 나 혼자 움직이게 되었다.

예전엔 반찬도 많이 준비해 뒀는데 이젠 그것도 하지 않는다. 밥은 해 먹고 매식하면 된다며 국만 두어 가지 끓여 달라니 참 편해졌다.

그래도 나물 몇 개 해두면 먹을 것 같아서 봄동과 오이무침, 가지나물을 한 두 끼 양만 만들어 작은 반찬통에 담아 두고 나왔다.

 

코로나로 3년 만에 모인 남매들은 부모님 생전 얘기에 웃다가 울먹이며 고생 많이 하고 떠난 두 분을 그리워했다. 우리 세대는 이런 제사상도 받지 않을 거란 말에는 모두가 동의했다.

그렇게 헤어지고 자매들만 따로 모여 동생네 집에서 늦게까지 놀다 자고 거제로 이사한 둘째언니네로 이동했다.

태풍 매미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고자 홀몸으로 쌓았다는 매미성과 돔식물원의 웅장함도 좋았지만 역시 바다와 가까이한 시간이 가장 좋았다. 바위틈에 있는 고둥과 홍합, 파도에 밀려와 돌아가지 못한 해삼 두 마리를 잡으며 환호했다. 열 살 조카손주가 가장 신났다. 역시 아이들의 놀거리는 스마트폰이 아니라 자연이다. 우리 손으로 마련한 먹거리로 어스름한 바다 바라보며 먹는 저녁은 꿀맛이었다. 밤에 불멍시간도 좋았고 유호전망대에서 거가대교가 보여주는 빛의 향연도 멋졌다.

 

사흘 놀면서 집에 있는 부자는 잊었다. 가끔 문자와 전화로 뭐한다고 가물치 콧구멍에 함흥차사냐며 궁금해 하는 남편에게도 짧은 답변만 보냈다.

 

꿈같은 시간을 뒤로하고 집에 오는 날, 수서역까지 마중 나온 남편은 혼자였다.

 

 

하진인 뭐해?”

 

 

, 노래 듣고 있어서 내만 나왔지.”
 

 

무심하게 말하는 남편이 놀라웠다. 자폐인 아들을 혼자 집에 있게 하는 건 방치, 학대라며 절대 용납하지 않던 남편이었다. 빈 집에서 혼자 있는 게 얼마나 편한지 아냐고 귀에 딱지가 붙도록 얘기해도 귓등으로만 듣더니 지난 달 모임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있게 해 본 이후 남편이 달라졌다. 안 하면 불안하지만 해 보면 괜찮은 일이 이것 뿐 이겠는가.

 

집에 들어오니 내가 사흘간 비운 집이 맞나 싶을 정도로 깔끔했다. 아들은 씨익 웃고는 제 방으로 들어갔고, 남편은 자신이 살림 잘하고 살았다는 칭찬이 듣고 싶어 내 눈치를 보는 듯했다.

 

 

이제 주부 다 됐구만, 살림하느라 애썼다요.”

 

아들과 똑같은 표정으로 씨익 웃는 남편, 이제 일주일 여행을 시도해야겠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미리 겁 줄 필요는 없으니까.

 

 

다음 날, 아침을 먹으려고 냉장고를 열었더니 빈 반찬통이 나란히 들어 있었다.

 

 

뭐야? 빈 통을 왜 다 넣어놨어? 설거지하기 싫어서 그런 거야?”
 

 

 

내 말에 갑자기 웃는 남편.
 

 

 

어제 저녁 먹고 하진이한테 반찬통 뚜껑 닫으라 했더니 냉장고에 넣기까지 하더만 빈통이었나 보네, 허허허...”
 

 

 

표정이 확 바뀐 나는 아들을 바라보며
 

 

 

아이고, 니가 그랬구나. 잘했다 정하진!”
 

 

엄지척해보였더니 아들은 뭘 그정도 가지고의 표정으로 거만한 자세를 취했다. 못하는 게 아니라 안하는 걸 자꾸 잊는다. 기회를 주지 않고 기다리지 못하는 성급한 버릇을 고쳐야 됨을 또 깨달았다. 뭔가 지시하고 잘 했나 슬쩍 살펴보는 나와 달리 남편은 아들 행동을 믿고 확인하지 않는다는 것도 알았다.

 

 

아들의 달라진 점은 혼자 생각하고 고민하는 모습이다. 거창하게 표현해서 고민이지만 나름 생각하는 모습이 꽤 진지하다. 밥을 적당히 먹은 것 같은데 평소에는 더 먹고 싶으면 본인이 일어나 바로 밥을 떠오든지 엄마한테 빈 그릇 내밀며 더 달라고 했다. 요즘은 고개를 숙이고 한참을 있다. 밥그릇, 국그릇 빈 걸 뚫어져라 바라보며 더 먹고 싶은데 말을 해? 말어?’ 고민하는 것 같다. 그러다가 벌떡 일어나 알아들을 수 없는 모음만을 나열한다.

 

 

밥 더 먹고 싶어? 그럼 밥 한마디라도 해봐.”
 

 

그제야 을 말하는 아들에게 그래, 네가 갖다 먹어라 하면 신나게 주방으로 움직인다.

 

남편과 아들의 작은 변화에도 큰 기쁨을 얻는 나의 요즘은 평화롭다. 우리 가족의 삶이 예전처럼 고달프기만 한 건 아니라서 감사한 날들이다.

긴 세월 나의 언행으로 부자가 달라졌다는 자부심이, 남편에게 모든 걸 맡기고 혼자 여행하려는 이기심으로 변질되지 않도록 적당한 수위 조절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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