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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왁자지껄 가족 34_조미영]여행의 즐거움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04-14 조회수695


회사의 급한 사정으로 미리 계획했던 가족 여행에 휴가를 낼 수 없다며 딸이 아쉬워했다
. 다행히 다른 직원의 도움으로 이틀 휴가를 하루로 변경했다.

수도권에서 혼자 사는 딸은 여행 당일 아침 7시에 서울 집으로 출발한다고 연락이 왔다. 딸 도착하면 같이 아침 먹으려고 음식 해놓은 걸 보고 기다려야 하는 아들은 힘들어 했다. 일찌감치 만들어 놓은 나물 종류와 된장찌개 냄새는 아들의 식욕을 자극했다. 손을 씻고 오더니 수저를 챙겨 식탁에 놓았다.

하진아, 좀 있으면 누나 올 건데 조금만 더 기다렸다가...”
 

채 말이 끝나기도 전에 자폐인 아들은 두 손으로 본인 머리를 치며 눈을 부릅떴다. 나는 더 이상 아무 말이 필요 없다는 걸 알고 돌아섰다. 괜히 냄비 뚜껑을 열어 큰소리 나게 닫았고 음식 준비로 지저분한 씽크대 주위의 식기들을 세게 들었다 놨다 하며 분위기를 험악하게 만들었다. 평소와 다른 엄마를 보며 아들은 살짝 겁을 먹었다. 소파에 앉아 주방 쪽으로 시선을 고정시키고 화난 엄마를 바라보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 이게 통하네?’하는 마음으로 분이기를 풀지 않았다. 한편으론 먼저 밥 먹게 하려던 마음이 싹 달아났다. 평소 8시에 먹던 아침을 9시 반이 넘도록 준비만 하고 먹지 못하게 했으니 아들에겐 고역일 수도 있었다. 순간의 자해 행동은 있었지만 더 고집 피우지 않고 잘 참아준 아들이 또 기특했다.

넷이 식탁에 앉자마자 아들을 칭찬했다.
 

누나 올 때까지 기다려줘서 고마워 하진아.”
 

아들은 자신의 행동이 엄마의 소리없는 화남으로 억지춘양이었음을 알고는 겸연쩍은 듯 웃었다.

 

바삐 움직여 도착한 강릉 아르떼뮤지엄은 저절로 탄성이 흘러나왔다. 제주에 이어 여수와 강릉에 설치된 빛과 소리의 미디어아트 전시관은 눈과 귀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거울로 반사된 공간은 실제보다 훨씬 넓은 착각을 불러왔다. 파도가 밀려와 발을 적시는 느낌은 실제와 흡사했다.

낯선 걸 피하는 편인 아들도 모든 걸 즐겼다. 손으로 만지거나 얼굴을 대보기도 하면서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경포호 주변을 산책하며 벚꽃과 목련 등 봄꽃에 취해 적당한 인파 속에서 봄을 즐겼다.

숙소에 도착해서 옷장을 열어보고는 깜짝 놀랐다. 우리 앞의 투숙객이 옷을 놔두고 퇴실했나 싶었다. 언제 들어왔는지 아들은 안방 옷장에 겉옷을 걸어두고는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있었다.

세상에나, 말로 일일이 지시하고 눈짓으로 싸인 줘야 움직이는 우리 아들이 이렇게 훌륭하게 옷을 걸어놨네, 정하진 최고!”
 

엄지를 치켜세우며 호들갑스런 나의 반응에 뭘 그런 걸 가지고의 표정으로 미소짓는 아들은 꽤 늠름했다. 할 수 있는 걸 안하다 보니 못할 거라는 짐작으로 늘 다그치고 명령하는 나를 또 반성했다. 기다려줘야 한다는 기본 전제를 잊고 재촉하는 버릇을 버리는 게 참 어렵다.

낮에 찍은 사진을 가족대화방에 올리며 웃고 떠드는 사이 밤이 깊었다. 아들에게 침대와 온돌방 중 어디서 자고 싶냐 물으니 침대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집과 비슷한 구조의 숙소라 아들은 모든 게 낯설지 않아 보였다. 편안한 익숙함이 지속되도록 아들의 독립을 현재와 비슷하게 해야겠다는 생각이 굳어졌다.

 

다음 날은 포천 광릉식물원을 방문했다. 유독 고사목이 많아 화려한 봄꽃보다 갈색 나무들이 즐비했다. 만보 이상 걸으며 가끔 걷기 싫은 티를 내면서도 아들은 우리 뒤를 잘 따라왔다. 남매가 개나리꽃 아래 다정하게 서 있는 모습은 그림 같았다. 아들 주위의 풍경을 찍으려고 폰을 들면 어느 새 자기 찍으라고 폼 잡는 아들을 보며 우리는 또 크게 웃었다.

포천 하면 이동갈비라고 어디가 좋은지 검색해서 찾아간 곳은 꽤 인적 드문 외진 곳이었다. 영업을 하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조용했는데 주차장에 대여섯 대의 승용차가 보였다. 반찬도 깔끔하고 갈비는 연하고 맛났다.

우리가 먹고 나올 때쯤 식당은 만석이었다. 단골로 보이는 손님이 많았는데 맛과 친절로 사람들이 많이 오는 것 같았다. 이런 외딴 곳에 까다로운 고객을 고정으로 확보하려면 얼마나 치열했을까 생각하니 사는 게 경이롭다.

 

한두 번쯤 식당에서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아들에게 인상 쓰기도 하던 예전과 달리 이번 여행은 무난함을 넘어 만족스러웠다. 짧아서 아쉬웠다. 여전히 우리 가족의 분위기는 아들이 주도하는 것 같지만 아들에게 과한 간섭이나 반응을 그냥 봐주고 넘어가다 보니 자연스런 가족여행이 되어간다.

우리를 놀라게 하는 아들의 행동은 우리가 알게 모르게 유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짙어진다. 그게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가족의 힘이 크다는 건 부인할 수 없다.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서는 가족 모두가 노력해야 한다. 아들의 모든 것을 그냥 받아들이기보다 상황에 맞게 생각하고 움직일 수 있도록 내가 더 세심하게 두루 살펴야겠다는 다짐을 한다.

아들의 돌발행동으로 침묵의 순간이 잦았던 과거와 달리 여행의 즐거움이 이번 정도면 딱 좋다. 남산공원 벚꽃 축제 무대 앞에서 음악에 맞춰 신나게 춤춘 것 정도는 흥이 많아 그런 걸로 이해하고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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