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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너와 나의 시간들 01_김명희] 울 아들은 갬성쟁이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06-07 조회수725



울 아들은 갬성쟁이

 

  어느새 담장이나 울타리마다 장미가 붉게 타오르는 아름다운 계절이 돌아왔다. 이 아름답던 꽃도 얼마 지나지 않으면 떨구어져 바닥을 붉게 물들이는 시간이 온다. 꽃은 피어 있어도 예쁘지만, 또 떨어져 깔려있는 모습에서는 피어 있을 때 와는 또 다른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나에게는 지금 29살이 된 아들이 있다. 지금은 언어의 발달도 사회성도 많이 좋아진 편이라 때로는 능청스럽게 농담도 하고 때로는 자기에게 불리한 상황에서 임기응변으로 위기를 대충 얼버무릴 줄도 알게 될 정도로 많은 발전이 있었지만 5살까지만 해도 겨우 필요한 몇몇 단어를 말할 정도의 언어와 인지능력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아들은 그 중에서 그나마 유난히 감성이 풍부했었다. 그래서 쇼핑이나 시장에 가게 되면 주인분들의 말이나 행동에 리액션을 너무 멋지게 잘해서 정육점에서 고기를 써는 모습에도 백화점에 즐비한 상품을 보고도 "~~"라는 감탄사를 연발하곤 했다. 그 모습에 그분들은" 너 때문에 기분이 좋아서 덤을 준다"라며 무엇인가를 하나씩 더 얻어 오기도 하는 것처럼 마음에 어떤 느낌이 작용하면 그렇게 리얼한 표정을 지으면서 감정을 전달하기도 했다.

 

  ​3~4살쯤 어느 봄날이었다 개나리 진달래가 피고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서 온통 주변이 꽃 대궐이던 때, 우리가 살았던 창동 하나로마트 근처 가로수길에도 벚꽃이 만발했었다. 정말 길 양쪽으로 즐비하게 서 있는 나무마다 하얗게 핀 꽃들을 보면 누구나 탄성이 저절로 나오기도 했지만, 어느 날 시장을 보고 나오며 그 벚꽃 핀 모습에 영락없이 감탄의 언어가 튀어나왔는데 너무도 웃겨서 지금 생각해도 웃음이 난다. 너무도 아름다운 벚꽃 무리를 보고 아들이 동그랗게 눈을 크게 뜨고 벚꽃을 향해 하는 말이 ~~이쁘다 민들레!!’라고 반전 언어를 보여주어 모두들 박장대소 하게 했고 지금도 우리 식구는 봄날 그렇게 만개한 벚꽃 광경을 마주하게 되면 입을 모아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이쁘다 민들레"라는 말이 동시에 터져 나온다. 그리고 아들에게 그런 어릴 적 이야기들을 해주면 머쓱해서 피식 웃고 만다.

  ​내 기억 속에는 또 꽃에 얽힌 아들의 감성을 엮어 내던 또 다른 일 하나가 생각난다. 장미의 계절이 오면 5살이던 유치원 시절의 한 장면이 바로 그날이다. 유치원을 집에서 떨어진 곳에 보내게 되어 늘 차로 등·하원을 시켜야 했고 그날도 하원 시간에 맞춰 아들을 데리러 갔다가 조금 이른 시간이고 여유가 있어서 주변을 거닐다가 문득 빨갛게 떨어진 장미꽃잎이 너무 예뻐서 무얼 할까 생각하다가 무심히 차 앞 범퍼에다 꽃잎을 모아서 커다랗게 하트를 만들어 놓았다. 만들 때는 아들에게 보여줄 이벤트라는 생각은 하지도 않고 단지 떨어진 꽃잎이 너무도 이쁜데 아깝고 아쉬운 마음에 심심풀이로 한번 해 본 거였는데, 아들이 보여준 의외의 모습에 마음이 더 뭉클해졌던 일이라 아직도 기억에서 붉게 남아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게 하얀 차 범퍼 위를 빨간 장미 꽃잎으로 일궈낸 하트는 내가 봐도 정말 이쁘긴 했었다. 아들은 멀리서 뛰어오다 순간 걸음을 멈추고 말없이 눈물을 흘리며 달려와 내 품에 와락 안겼다. 그래서 엉겁결에 "엄마가 널 사랑하는 마음이지"라고 처음 의도와 다르게 분위기가 그렇게 말하게 했고 주위의 모두도 아들을 위해 엄마가 이벤트를 했다고 느끼고 있었다. 선생님이 가까이 다가오시더니 "어머님 저도 눈물 나려고 해요"하시며 "○○이 감성이 어머님을 닮아서인 것 같아요" 그래서 그렇게 한바탕 사랑타령을 했던 날도 있었다.

  ​활짝 핀 민들레 홀씨가 바람이 불면 날아가 버린다는 사실을 아직 알지못할 때 딴에는 민들레 홀씨의 하얀 아름다움을 따다가 선생님께 드린다고 뛰어 가다가 홀씨가 다 날아가는 바람에 꽃대만 들고 마냥 섭섭하며 야속한 마음과 선생님께 드리고 싶었던 마음이 불발이 된 속상함에 과부화가 생겨 그날은 또 한차례 전쟁을 치루기도 했던 일들이 새록새록 기억이 피어난다.

 

  ​또 감성이 풍부해서인지 흥은 또 얼마나 많았는지ᆢ... 테크노 댄스가 열풍이던 때 그때는 길거리 가게들에서 테크노 음악을 크게 틀어 놓기도 해서 길을 걸으면 여기저기서 신나는 음악 소리를 듣게 되고 아들은 브릿지라고 머리카락 전부가 아닌 몇 가닥만을 탈색해 멋을 때 부리는 걸 참 좋아했다. 그래서 옆 머리카락 몇 가닥을 노랗게 염색해주면 너무 좋아했다. 그런 모습으로 가게에서 흘러나오는 경쾌하고 신나는 테크노 음악에 오른손을 반쯤 꺽어 세우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리듬을 타면 주위에서 보는 사람이 "어머 저 애기 좀 봐!"라며 박수를 쳐 주곤 했었다. 세월이 흘러 생각을 해보면 그때는 모르고 지나쳐서 순간순간을 힘들다고만 했었는데, 이제와서 돌아다보니 아들로 인해 웃고 행복하고 즐거웠던 일들이 참 많이 있었구나. 다시 한번 소중해진다.

 

  ​아들은 그렇게 자라 어느새 올해 29살이 되었고 이제는 제법 어엿한 청년의 모습을 갖추는데 한 걸음씩 더 가까이 가게 되었고 가족들의 생일이나 기념일은 꼭 기억해서 립스틱 향수 모자 등을 얼마인지 가격은 모르지만, 선물이라며 몰래 사와 머리맡에 두기도 하고 가끔은 달려와 안기며 "뭐니 뭐니 해도 우리 엄마가 최고지"라며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뽀뽀하기도 하면 나는 "다 큰 것이 징그럽게~~"라고 말은 하지만 고맙고 또 얼마나 감사한지. 그러면서 어렸을 때부터 풍부했던 갬성쟁이 우리 아들이 그런 감성으로 모두에게 사랑을 주고 또, 사랑받는 가슴 따뜻한 남자로 아들로 그렇게 더 성장하고 더욱 성숙해지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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