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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너와 나의 시간들 02_김명희] 학교폭력에 쉽게 노출되는 우리 아이들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06-29 조회수426




학교폭력에 쉽게 노출되는 우리 아이들

 

TV 프로그램 중에 요즘은 트로트가 대세이고 미스터트롯을 통해 임영웅이 영웅이 되면서 여느 때보다 유난히 더 많은 트로트 경연대회가 방송국 여기저기서 펼쳐졌었다. 그중에서 불타는 트롯맨에서 우승자로 거의 확정된 사람이 지난날의 학교폭력에 연루되었다는 이유로 결국 도중 하자를 하게 되면서 그 결과를 보고 어렸을 때 철모르고 한 것을 한 번만 선처해 주면 앞으로 더 반성하고 돌아보면서 살 수 있게 기회를 주자는 사람과 그 반대로 그것은 용서할 수도 있는 사과할 수도, 피해자가 겪어야 했던 고통과 그로 인한 트라우마 안고 살았을 세월을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냐면서 반기를 드는 사람으로 나누어져 의견들이 분분했었다.

돌아보면 아주 오래전 학교폭력이라는 게 언급되지도 않았고 학교에서 선생님과 학생, 그리고 학생과 학생 사이에 일어난 폭력들도 그저 선생님이 제자를 선배가 후배를 잘되리라고 사소하게 생각했고 그래서 때로는 사랑의 매로 불리기도 했었다.

 

지금은 20대 후반인 아들도 초등학교를 일반 학교 일반학급에서 생활했다. 그런데도 걱정과는 다르게 저학년 때에는 별문제 없이 지냈었다. 그런데 고학년이 되면서 아들은 키가 큰 편에 속했고 거기에 비해 다른 친구들과는 좀 달라 보였던 이유에서 인지, 유난히 한 반 아이에게 지금 생각하면 괴롭힘을 당했었다. 하교 시 기분 좋게 집으로 오는 적이 없고 늘 울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어눌하게 상황설명을 들어보면, 00이라는 아이가 뒤에서 가방을 발로 차고 왜 그러냐고 하면 돌아서서 안 그런 척하고 때로는 바보라며 놀리는 등등의 행동과 또 다른 아들을 자극하는 언어로 화를 돋게 했다. 그 아이로 인해 조용할 날이 없었고 그러한 일들로 아들이 학교에서 등·하교 시간은 살 얼음장 같은 날로 보냈었다.

하지만 그저 우리 아이가 보통 아이와 다르다는 이유로 혹시나 또 다른 피해나 따돌림을 당할까 늘 그냥 아들을 달래며 그 친구가 뭐라고 하든 대꾸도 하지 말고 그 자리를 모른 채 피하거나 지나쳐 오라고 말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교문 앞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 또래보다 훨씬 키가 크고 덩치도 커서 애아범처럼 느껴지는 그 아이에게 지금껏 아들에게 들은 이야기를 하면서 사이좋게 놀았으면 하는 말을 전했다. 그 아이는 우리 아들이 자꾸 먼저 그런다고 하길래 그 말끝에 덧붙여 그럴 경우가 생기면 이제부터는 나한테 직접 말하라고 한 데 얼마를 지났을까.

아들은 또 그 아이 때문이라며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너무나 화난 표정과 그리고 억울한 감정을 어쩔 수 없어서인지 처음으로 아이들이 하는 욕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무슨 일이 있으면 나한테 말하라고 했던 이유로 그 애는 아들이 자기에게 잘못 했다며 집으로 가자며 손을 끌고 당겼던 모양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아이를 대신해서 찾아가 자초지종도 들어보고 잘잘못을 따져 혼을 내고도 싶은 마음이 더 컸지만, 장애가 있는 부모로서 늘 위축되고 자존감이 떨어져서 냉철하게 대응을 잘못하지 못해서인지 그때는 그래봐야 또다시 그 아이는 어쩌면 아들에게 더 큰 화풀이를 행사할 것 같아서 속상한 마음을 삼킨 채, 담임선생님께나 그 누구에게도 언급도 하지 않고 속앓이하면서 속상한 마음에 아들을 안고 펑펑 울었던 생각이 난다.

 

20여 년 전만 해도 그렇게 학교폭력 자체가 드러나지 않은 때였고, 부족한 아들이라는 그 핸디캡을 감내하고 참고 혹여 그런 일들이 학교에 전해져 봐야 좋을 게 없다고만 생각하며 단지 그 아이 같은 애들이 두 번 다시 그런 행동을 하지 말기를 기도로 대신 하곤 했었다. 그러고는 아마도 한두 차례 그러한 일들이 더 있었고 학년이 바뀌고 또 중·고등학교를 가면서 그 아이와는 더는 마주치는 일이 없어져서 한결 학교생활이 부드러워졌었다.

그리고 몇 년을 지나 대학생이 된 어느 날, 우연히 이사한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 우리 아들은 그 아이 이름을 또렷이 기억했고 그 아이 이름을 중얼거리며 내 뒤에 얼른 숨는 것이었다. 나도 그 아이 얼굴을 보니 지난 일들이 다시 생각나서 심장이 뛰었지만, 조심스럽게 인사를 했다. 그리고 그 아이를 향해 우리 아들을 알아보겠냐고 물었더니 그 애 또한 머뭇거리며 우리 아들 이름을 말했다. 나는 갑자기 와락 눈물이 쏟아졌다. 우리 아이는 수년 동안 그 아이로 인해, 저만치 또래 아이들이 보기만 해도 삽시간에 어디론가 숨어버릴 만큼 그 아이를 싫어했고 무서워했었다. 그런데 그 아이는 그 많은 세월 시간을 과연 어떻게 지냈을까? 짧은 시간에 수만 가지 생각들이 스치고 지나갔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면서 "00! 너 그때 왜 그랬니?"라고 말을 하는데 가슴이 떨리면서 그때의 고통과 우리가 겪어야 했던 아픔들이 되뇌어지면서 얼굴도 상기되고 목소리까지 떨려나 왔다. 왜 그랬냐는 말에 그 애도 무엇을 내가 말하는지 자기가 했던 일을 기억하는 듯 쭈뼛거리더니 "죄송합니다. 그때는 철이 없어서~~" 라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서 나는 "그랬구나! 그런데 너로 인해 우리 아들은 그 시간 동안 얼마나 아프고 힘들어했는지 알고 있니? 그럼, 네가 정말 잘못을 인정한다면 진심으로 우리 아들에게 사과해라."라고 했고, 그 애는 아들에게 다가가 "정말 미안했어! 미안해~"라며 아들의 손을 잡기도 하고 안아 주었다. 당황하던 아들도 내 말과 00이가 하는 말과 행동을 보고 자기에게 사과한다는 것을 느꼈는지 다가가 안으면서 대성통곡을 했다. 그 모습의 가슴에 얼마나 상처가 응어리로 남아 있었을지 짐작이 갔다. 옆에 서서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나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나는 그 아이에게 "00! 시간이 지났지만, 진심으로 사과해 주어서 고마워"라고 안아 주었다. 죄송하다는 말과 아들에게는 미안했다며 다시 악수를 청하고 헤어졌다. 그리고 얼마를 지나 엘리베이터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며 환하게 웃는 아들의 모습에서 평안함을 느꼈다.

 

문득 그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들이 초등학교 그 시절로 돌아가 그런 일들로 또다시 힘들어한다면, 지금처럼 그냥 참고 그리고 그 순간을 피하라고만 했을지? 아니면 학교에나 그 아이 집에 알려 징계받게 했다면 우리 아들은 더 이상 힘들지 않고 상처도 깊어 지지 않았을까? 아니면 확대된 일로 많은 사람의 시선에 더 깊은 아픔을 낳게 했을까? 수많은 질문이 나에게로 쏟아졌고, 또 한편으로는 이런 경우는 일어날 기회가 없을 수도 있지만 아들의 경우처럼 어느 시간이 흘러 우연이라도 만나 진심으로 사과받게 되는 게 옳았을까??

아들은 지금은 그 아이를 보면 겁나고 싫냐고 하는 물음에, "괜찮아"라고 하니 묵은 감정들이 조금은 사라지는 기분이 드나 싶어졌다. 요즘은 가끔 페이스북에서 그 애 소식을 보고 알려줄 정도가 되었으니 일단은 안심이지만. 어떤 게 현명한 대처이고 최선이 될지에 대해서는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일반적인 경우가 아닌 장애를 가지고 있는 경우라서 더 특별하고 조심스러워서 지금도 그때도 적절하게 대응을 한 것인지 모른다. 다만, 사과는 상대에 대한 진심이어야 하고 상대가 그걸 받아 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때로는 사과하면서 안 받아 준다고 사과하는데 왜 안 받아 주냐고 되레 화를 내는 경우를 본 적도 있는데, 그 애와 아들은 진심으로 사과하고 진심으로 사과받아주어서 조금이라도 가벼워질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하여튼 누구에게나 어디서든 그러한 괴롭힘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지금도 기도하며 장애인이라고 해서 무시하고 무관심하고 함부로 해도 된다는 몰지각한 사고들이 사라진 건전한 세상 밝은 세상에서 함께 어우러져 살 수 있는 날들을 꿈꾸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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