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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새벽까페 21_김종옥] 아이를 책으로 읽다2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4-03-06 조회수1,484



<
아이를 책으로 읽다 2 >

 

김종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문화예술특별위원회)

 

 

자폐성 발달장애를 갖고 있는 이들은 각자 다르기도 하고 모두 비슷하기도 해서, 이웃행성의 익숙한 손님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물론 지금의 지구 생물은 모두 38억년 전 우연의 순간, 단 한 방울의 세포에서 시작한 종족(!)들이고, 인간과 침팬지의 유전자 차이는 1.23% 밖에 안 나는 형제들인지라, 그 중에서도 단일종족인 80억 인간들 사이의 차이란 적어도 생물의 범위에서는 그야말로 별 것 아닐 테니, 자폐를 갖고 있다 해서 먼 이웃행성의 손님이라고까지 느낄 일은 아니겠다.

 

그러나 어쨌든 우주에 똑같은 개체란 건 있지 않고, 우리는 인간이라서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생물이라고는 인간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자신뿐만 아니라 그 누구도 온전히 이해해 본 적도, 이해할 수도 없는 타자의 개체들일 뿐이니, 서로의 다름은 지구행성 안 부족의 차이라 한들, 이웃행성의 손님 같은 사이라 한들 대체로 틀린 말은 아니다(고 우겨본다).

 

다르고, 같고, 외로운

 

어느 시인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고 읊었거니와 우리는 그 섬에서 누군가를 만날 때조차도 서로 낯설어서 외롭다고 느낀다. 자폐를 갖고 있는 이들이 느끼는 낯설음과 외로움은 어떤 것일까, 하는 궁금증은 뭍에서 섬을 바라보는 마음, 섬에서 뭍을 바라보는 마음과도 같다. 섬이란 게 애초엔 옹긋하게 솟은 산봉우리였을 테니, 산으로 서로 연결된 산맥이었는데 그 사이로 물이 들어와서 산봉우리가 섬이 된 것일 테니, 뿌리에서는 서로 한 바닥의 땅으로 단단히 이어져 있는 섬을 보면서 외롭다 애처로워하지는 않아도 될 일이긴 하다. 그러나 굳이 거기 붙들려 있는 나무 한그루, 풀 한포기 입장을 생각해 외로움에 연민하는 이유는, 그렇다, 외로움이 인간의 본질이라서 그렇다.

 

나는 나의 외로움이 나의 본질이라서 본질적으로 청승맞다. 나뿐만 아니라 사람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그 청승을 벗어나보려고 섬에도 가보고 뭍에도 가보고 산꼭대기에도 가보고 하는 것인가 보다. 아무튼 외로움과 본질은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데, 자폐를 가진 이들을 볼 때면 더욱 그렇다. 우리는 어느 주소지에서 만나 이야기를 나눌 것인가.

 

어쩌다 자폐를 가진 이들이 스스로의 이야기를 들려주면 참으로 반갑다. 그 이야기를 글로 만나면 더욱 반갑다. 대화에는 너무 많은 주변 정보가 있어서 집중하기가 어려울 때가 많은데, 글로 적어놓으면 오직 글씨만 보면 되니까 이해가 명료해진다. 글을 쓴다는 건 그래서 어려운 작업인데, 그 어려운 작업을 해주는 그들이 고맙다.

 

우리는 그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작은 통로를 하나 얻는 셈이다. 통로라는 것은 양쪽이 뚫려 있는 것이니, 또한 우리는 그것을 통해 서로의 마음이 오가는 것을 보게 된다. 글을 써주는 이들을 통해서 우리는 자신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갖고 있는 다른 발달장애인들의 마음까지도 엿볼 수 있다. 이렇게 좋은 대변자들, 아니 대독자들(대신 읽어주는 자)을 잘 찾아냈으면 좋겠다. 연결되어 있으나 따로 떨어져 있는 섬들을 만나서 그 섬에는 어떤 나뭇가지, 어떤 풀이 흔들리며 자라 어떤 꽃이 피고 있는지 자꾸만 듣게 되면, 우리들이 갖는 차이란 기껏해야 취향의 차이쯤 되는 거라고 생각하게도 되지 않을까.

 

<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

 

사람들은 대체로 너는 어떤 사람이냐고 물을 때, 나는 좀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요, 라고 답하며 살아갈까? 아마 그럴 것 같다. 이 책 제목을 보고, 몇몇 사람에게 너는 좀 괜찮은 사람인 것 같으냐고 물어봤더니, 대체로 그렇다고들 했다. (물론 내게도 물어봤지만, 아직 답을 다 하지 못했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라는 답을 하기에 앞서 붙여야 하는 사설이 너무 길어서다. 나는 괜찮기는 한데 좀 번거로운 사람인가보다.) 그런데 우리말에서 괜찮다는 말은 품종이 괜찮다는 평가와 함께, 별 탈이 없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로 너는 괜찮으냐고 묻는다면 나는 절대 안 괜찮은데 그냥저냥 꾹꾹 눌러 참고 있는 사람이야, 라고 울분에 찬 대답을 할 사람들이 많을 게다. 물론 언제나 평정을 유지하는 괜찮은 마음의, 썩 괜찮은 사람도 많겠지만.

이 글을 쓴 일본인 청년 히가시다 나오키는 일곱 살에 자폐 진단을 받았다. 그는 남과 대화하기는 어렵지만 글자판의 글자를 가리키며 의사소통을 할 수 있다. 그는 자기를 설명하는 여러 권의 책을 썼고, 그 중 <나는 왜 팔짝팔짝 뛸까?>라는 책은 같은 이름의 다큐멘터리로도 만들어졌다. 이 다큐필름은 작년에 여러 곳에서 공동체상영을 했었는데, 나도 가서 보았다. 히가시다 나오키는 현재 일본에서 강연도 많이 다니며 자폐장애인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활동을 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왜 팔짝팔짝 뛸까?>는 몇 해 전 우리나라에서도 출간되었지만 지금은 절판되어 구할 수 없어 아쉽다. 다만 이 책의 내용을 소개한 글들이 있어서 그것을 통해 간접적으로 보았다.

 

히가시다 나오키의 글을 읽으면, 자기의 어떤 의식과 행동이 비장애인들의 그것과 다른지를 꼼꼼히 관찰하고 명확하게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감탄하게 된다. 자폐를 가진 모두가 똑같은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그의 글을 읽으면서 주변의 여러 사람이 떠올라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 성의 있게, 이렇게 곡진하게 자기를 설명하는 글을 만나는 건 행운이 아닐 수 없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자기 의지로 자기 행동을 통제하기 어려워 마치 고장 난 로봇 같다’. 또 그에게 기억은 선이 아니라 점 같은 것이어서, 10년 전 기억이나 어제의 기억이나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나는 이 소개를 읽고서 비로소 멀고 가까운 차이가 없이 바로 어제 겪은 일로 어떤 기억이 호명되어 나오는 이유를 짐작하게 되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선이라면 먼 데 있는 것은 그 거리만큼 작거나 흐려지기 마련인데, 점이라면 퐁퐁 솟아나는 거품처럼 갑자기 득달같이 달려들어 눈앞에서 터질 수 있는 거다.)

그는 다른 사람을 만날 때 온 세상이 한꺼번에 말을 거는 것처럼 느껴져 인사하는 사람을 못 알아볼 때가 있다고도 했다. 누군가 인사를 해올 때 곤혹스러워 눈길을 피하는 일도 많았을 게다. 그런 당황스런 순간을 그는 이렇게 적었다.

 

“... 나는 인사를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말을 잘 못하는 탓입니다. 아는 사람에게도 인사를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내게는 인사가 몹시 어려운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사람을 만나면 안녕하세요하고 한마디 하는 것이 왜 그렇게 어려운 일인지 여러분은 이상하게 여기겠지요. 내게는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내 눈에는 사람도 풍경의 일부로 보일 뿐입니다. 산과 나무, 건물과 새, 모든 것이 한꺼번에 내게 말을 거는 듯한 느낌입니다. 물론 그것들 전부를 상대할 수 없으니까, 그때 가장 내 관심을 끄는 것에 마음이 움직입니다. ...인사를 하기 위해서 사람만을 구별하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런데 그는 슬픔이 많다. 어렸을 때부터 눈물과 슬픔이 많았고, 그 기억의 보따리가 크다. 그의 표현대로 그가 안고 있는 마음의 어둠은 어떤 마법을 걸어도 사라지지 않는것인가 보다. 잘못 들어온 다른 세계 속에 있는 것 같은 이질감이 그를 슬프게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건 아마도 본질적인 외로움일텐데, 그걸 이질감으로 느끼게 하는 이 세상은 그에게 무례하기 짝이 없다.

예전에 보았던 애니메이션 매리와 맥스에서 발달장애가 있던 주인공 맥스는 이렇게 말했었다.

나는 나 아닌 게 되는 게 소원이었어.”

자신이 보기에 스스로 괜찮은 사람인 히가시다 나오키, 그도 이런 외로움과 이질감이 뒤섞인 슬픔의 그늘 속에 웅크리고 앉아있을 때가 많은 것이다.

“... 나는 언제나 사람들의 시선에 허둥댑니다. 나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이 두렵습니다. 모두 바늘 같은 시선으로 나를 보기 때문입니다. .... 이성으로 감성을 통제하고 대화로 생각을 전달하는 현대사회를, 나는 발을 잘못 들이민 다른 차원의 세계처럼 느낍니다. ... 사람들 눈에 내가 어떻게 비칠지, 그런 상상만 해도 나는 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어집니다. 내가 안고 있는 마음의 어둠은 어떤 마법을 걸어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 여러분은 할 수 있는 것을, 나는 하지 못하기 때문에 몇 번이나 내 자신이 싫어졌습니다. 장애를 안고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처지를 누구 탓으로 돌리거나 언젠가는 평범해지리라는 희망에 매달리는 것이 아닙니다.”

 

“... 나는 어렸을 때, 늘 울기만 했습니다. 문제를 일으킬 때마다, 몸속의 수분이 전부 눈물이 되기라도 한 것처럼 하염없이 흘러나왔습니다. 뭐가 그렇게 슬펐는지, 지금은 그 이유 하나하나를 기억하지 못합니다. 다만 나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심정과 있는 그대로의 나로 있을 수 있는 곳을 원했던 기억만 지금도 마음에 남아 있습니다.”

 

그런 그가 괜찮아지는일은 가능할 것인가. 본질적 외로움과 이질감으로 슬픈 그가 그늘 속에 앉아있으면서도 춥지 않은 날은 가능할 것인가.

 

“... 옛날의 나는 출구가 없는 캄캄한 터널 속에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때 내가 얼마나 고뇌했는지, 얼마나 난감했는지 아무도 몰랐을 겁니다. 내가 원한 것은 그저 꼭 안고서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그렇게 해준 후에야 비로소 인간으로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었습니다. 행복한 어른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가족 덕분입니다. 내가 흘린 눈물만큼이나 가족도 울어주었다는 것을 나는 잊지 않습니다.”

 

담벼락 아래 그늘이 있고 거기에 우리 아이들이 웅크리고 앉아 있다. 나도 그 그늘 옆에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이다. 엄마들은 늘 그래왔다.

(<나는 괜찮은 사람입니다> 히가시다 나오키, 흐름출판 )

 

<뒤바뀐 세계 >

 

이 책은 빅토리아 그롱댕이라는 프랑스 청년이 쓴 소설인데, 그는 비장애인이다. 다만 이 책을 소개하는 이유는, 자폐인의 세상 속에 있는 소수자 비자폐인의 이야기라는 독특한 구조 속에서 장애와 비장애의 구분에 대한 큰 질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무척, 엄청 재미있다.

 

그는 열 네살 때 장애인과 함께 하는 캠프에서 자폐장애인들을 만나 관심을 갖게 되어 자폐에 관한 공부를 하고는 열 여섯에 첫 소설을 쓰고 열 여덟에 출간했다. 이 소설 속 배경은 자폐인의 세상이다. 자폐스펙트럼을 가진 사람들만 태어나는 그 세계는 자폐에 맞게 짜이고 계획된 세상이다. 그 세상 속에 단 9명의 극소수 비자폐인이 있는데, 소설 속 주인공은 바로 그 비자폐인이다. 그러니까 그 세계 속에서는 비자폐인이 소수자이고 약자이다. 이 세상에서 비자폐인인 주인공은 정상인이 아니라 장애인이 되어 몹시 외롭고, 자신이 비자폐인이라 자폐인 맞춤한 세상에서 쓸모없는존재라서 슬프고 혼란스럽다.

 

자폐를 갖고 있는 친구들을 보면서 관심을 갖고,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고 싶어서 관찰과 공부를 하고는, 정상과 비정상, 장애와 비장애를 전복시킨 이야기를 만들어낸 이 기특하고 아름다운 젊은 청년의 소설은 매우 통쾌하고 재밌다. 우리가 알고 있는 자폐 관련 소재들이 이야기 속에 들어가 있어서, 그 익숙한 장치들을 보면서 자꾸만 웃음이 나왔다. (일테면 엄마아빠는 어떻게든 나를 치료하고 싶어했다같은 대목들이다. 실제 치료실 얘기가 이어진다.)

 

자폐인의 세계에서 주인공이 겪는 혼란은 바로 여기 비자폐인의 세계에서 자폐인이 겪는 혼란과 마치 거울을 마주한 것처럼 기묘하게 같다. 왼쪽 오른쪽이 바뀐 거울 속의 상처럼 말이다. 성의 있는 관찰, 공들인 묘사, 수줍지만 통쾌한 풍자,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에 대한 푸릇한 사랑. 참으로 사랑스런 소설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빅토리아 그롱댕의 팬이 되기로 결심했다. 어서 빨리 소설을 자꾸만 써대기를.

 

나에게는 미래가 없다. 아무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나는 장애인이라는 낙인이 찍혔고, 과소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었다. 나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그것은 편안한 고통이었다.“

 

내 인생은 아무 쓸모가 없다. 내 인생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이다

 

소설 속 주인공은 아픈데, 그것을 읽는 나는 자꾸만 웃음이 나오고, 그러다 발달장애를 가진 친구들에게 주는 그의 이 선물이 고마워 여기저기 열심히 소문을 냈다. 다만 이 글을 아들에게 읽히는 데는 아직 성공하지 못했다. 전복된 세상 이야기라는 걸 아이는 상상하기 버거워했다. 아니 귀찮아했다. 귀찮은 건지, 버거운 건지는 잘 모르겠다. 아무튼 게임에 쓸 시간을 할애할 정도로 당기지는 않는 눈치였다. 수많은 게임 속 설계된 가상의 세계를 오가고, 그 세계관들마다 갖고 있는 구조를 나름 이해하는 것처럼 보이는 아들에게, 장애와 비장애, 정상과 비정상이 전복된 이 세계 이야기가 충분히 이해되고 흥미로울 거라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역시 이 소설의 당사자 반응이 궁금했던 내 소망은 아직도 실패 중이다.

(<뒤바뀐 세계> 빅토리아 그롱댕 지음, 한울림스페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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