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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새벽까페 11_김종옥] 잠들지 않는 밤에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1-10-31 조회수1,784

가을이 깊어간다

 

가을이 깊어간다.

여름 끝이 길어져서 가을이 긴가민가 했는데 이른 추위가 김을 빼놓더니 어물쩡 겨울 분위기다. 여름이라 하기도 가을이라 하기도 이상한 계절이 지나고, 가을이라 하기도 겨울이라 하기도 억울한 계절이 슬슬 지나고 있다. 아무튼, 그래도 가을은 깊어만 간다.

 

비가 차가와지면 가을이었다. 9월말이면 비가 내릴 때 입술이 파래지며 한기가 들었다. 1025일 즈음이면 한 번씩 슬쩍 이른 추위가 들렀다 갔다. 곧 겨울이 올 테니 지금 가을날의 일들을 매조지하시라, 아니면 지금이라도 가을을 어여 즐기시라, 하듯이.(25일께라고 날짜를 기억하는 이유는, 해마다 그때 강릉에서 율곡선생을 기리는 율곡제 행사를 했었고, 그때마다 장롱 속에서 겨울 외투를 꺼내입고 다녀왔기 때문이다.)

 

1984년인가, 가을 단풍이 고왔던 해였는데, 119일에 눈이 펑펑 왔다. 엉금엉금 성기게 짠 자주색 세타를 입고 느닷없는 눈이 신기하다며 사진을 찍었다. 이른 눈을 맞고 코끝이 언 얼굴 뒤로 창덕궁의 가을단풍이 바다처럼 구름처럼 펼쳐졌다. 알록달록한 단풍바다 앞으로 쏟아지는 눈발이 찍힌 사진 귀퉁이에 119일이라는 날짜가 박혔다. 그래서 두고두고 기억한다, 119일에 불붙은 단풍 숲으로 떨어지던 차사나운 눈발을.

 

살다보면 봄이면 봄이라 좋고, 가을이면 가을이라 좋았던 시절이 있기 마련이다. 좋았던 봄, 빛나던 가을을 찬찬히 꼽다보면 오후 차 한잔의 시간쯤은 흐뭇하게 훌쩍 넘어간다. 나도 물론이거니와 누구에게나 그 목록이 두툼하길 빌지만은-.

 

가을이 깊어간다. 가을엔 무거운 얘기를 나누기에 좋은 계절이다. 자신에게도 남과도, 누구랄 것도 없이. 그래서 오늘은 무겁고 무서운 이야기다.

 

불면보다 무서운 것

 

며칠 반짝 잠이 길었다. 여느 때보다 한 두 시간씩 더 잔 듯하다. 가을이 오고 겨울이 오면 좀 더 자게 되는 것은, 서늘한 기운과 포근한 이불이 합쳐져서 그럴게다. 다만 그 시간만큼 에너지가 축적되어 기운이 돋았다기 보다는 그저 거칠고 엉성한 잠의 양이 한 두 시간 늘어버린 것뿐이라, 몸에 미안하기는 매한가지다. 몸에 미안하지 않으려면, 단풍이 찬란한 들판을 가을바람을 쐬어가며 싸돌아다니다가 따뜻한 물에 발 닦고 푸근히 잠들어야 하는 거다. 멍하니 담요 뒤집어쓰고 조는 듯 자는 듯 구겨져 있다가 잠들어 버리는 게 아니라.

 

불면증까지는 아니더라도 잠이 부실한 사람들이 주변에 차고 넘친다. 갱년기에 시작한 불면증은 삶의 고정값이 되어버린 지 오래라 새삼스런 화젯거리가 못 된다. 여든이 넘은 친정 엄마의 불면증 하소연도 삼십년 넘었으니 소리 나지 않아도 들리는 익숙한 노래 같다.

- 엄마, 얼굴이 부스스하네.

- 당췌 잠을 못 잤다, 잠을 자야 사람이 살 거 아니냐.

- 한 숨도 못 주무셨소?

- 한 숨도 못 자면 어떻게 사냐, 죽지. 잠깐 잤다가 새벽에 눈 떠지고 다시 잠들지 못하고 날을 새니 걱정이다.

- 그냥 눈 감고 누워있으면 안 되려나.

- 산 송장이냐, 눈 감고 누워있게.

- 낮에 좀 몸을 움직여 보시든지.

- 잠을 못 자서 몸이 천근만근인데 어떻게 낮에 움직이냐.

- 어제 보니 낮잠 주무시던데, 낮잠을 참았다가 밤에 푹 자야.

- 매정한 것 같으니라고. 밤에 한 숨도 못 자는데, 낮에 잠깐 눈 붙이는 것도 하지 말라면, 사람 죽으라는 거냐.

- 억지로 자려고 하지 말고 편하게 생각하시는 게...

- 고문이 따로 없는데 어떻게 편해지냐. 걱정하는 체 그만하고 불면증 없는 너나 잘 자고 살아라.

 

설핏 웃음이 난다. 불면증은 없지만 잠의 시간이 낡은 그물처럼 헤지고 구멍이 나버린 지는 오래 되었다. 나는 그 낡은 잠의 그물을 다독이지 않는다. 나는 나의 투정을 외면하는 오랜 버릇이 있다.
 

누구나 그렇듯이 아이 손을 잡고 이 치료실 저 조기교육실을 미친 듯이 다니는 시절이 끝나고 아이가 사춘기를 맞을 무렵이 되었을 때, ‘자다가 벌떡증상이 시작되었다. 아이가 조금씩은 나아지겠지만 결국 범주 자체를 넘어서서 따라잡지는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이해하고 나면, , 어찌 살 것이냐, 너를 어찌 살아가게 할 것이냐, 하는 날카로운 외침이 시도 때도 없이 나의 잠을 싹둑 끊어냈다. 어렴풋하게 슬슬 잠결에서 멀어지는 것이 아니라, 갑자기 누가 불어댄 듯이 잠이 훅 달아나버리는 것이다.

자식의 성장을, 그 앞에 펼쳐질 미래를, 설레는 기대로 그려보는 게 아니라 그가 디딜 땅이 그만 풀썩 먼지를 내며 무너지는 장면이 떠오른다. 다음 발을 디딜 곳은 어디인가. 그 다음 발을 디딜 곳은 어디인가.

 

그 무서운 그림을 무시하고 다시 잠들 수는 없었다. 잠이 오느냐, 앞이 어둡고 해가 뜨지 않을지 모르는데 잠이 오느냐. 내면에서는 숱하게 어두운 음성이 들렸던 듯하다.

불면보다 무서운 것이 있었고, 그 두려움을 무시하고 잠이 들지는 못했다. 자다가 문득 가슴이 저며 화들짝 눈을 뜨고 나면, 무엇엔가 사무치는 슬픔의 구름 속에 파묻혀 있는 것 같았다. 자려다 가위 눌리고, 슬픔에 사무쳐 놀라 잠이 깨는 나날이 계속되면서 나는 나의 잠과 더 이상 친하게 지내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내가 나를 재우지 않으려는 어떤 의지가 있으니, 나는 그것에 순응하기로 했다. 그리고는 잠에 대해 애닯거나 안타깝지 않았다. 별로 친한 사이가 아니니 각별히 신경을 쓸 일도, 곁을 내 주고 마음에 걸리적거릴 일도 아니었다.

 

불면인들

 

독일에서 온 독일할머니를 만난 적이 있었다. 비행기로 먼 길을 왔으니 피곤하시겠다고, 좀 주무시라고 했더니 그 분 말이, ‘어차피 좀 살다가 길게길게 누워 깊은 잠에 빠질 텐데 뭐하러 지금 자느라 시간을 보내겠냐는 거였다. 그 분의 낙천적 노년이 참 보기 좋았다.

 

돌아가신 지 한참 된 우리 할머니는 앉아서 깜박 조는 일은 있어도 절대 등을 대고 눕지 않았다. 졸고 계신 할머니에게 이불이라도 내어드릴라치면 손을 내저었다.

    “
놔둬라, 경을 칠. 낮에 등 대고 누워 자는 게 아니다.”

할머니는 중풍으로 쓰러지고 나서도 처음에는 밤에도 절대로 전등을 끄지 못하게 하셨다. 자는 게 죽는 것 같아 무서워 그랬다는 걸 얼마 뒤에 알았다. 그러던 할머니가 정신이 흐려지니 낮이건 밤이건 코를 골고 주무셨다.

 

아기들은 엉덩이를 높게 쳐들고 눈을 부비며 잠투정을 한다. 심리학자들 말로는 잠들기 싫은데 몸은 졸리니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니까 빨리 자려고 투정하는 게 아니라 잠에 빠져드는 자신에게 맞서고 있다는 거다.

 

독일할머니도, 우리 할머니도, 아기들도 잠이 들기 싫었던 건 무엇일까. 삶의 시간이 줄어드는 것이 아까워서, 다시는 삶의 시간으로 깨어나지 못할까봐 무서워서, 남들은 깨어있는데 나 혼자 어디론가 가는 게 까무러치는 것 같아 싫어서였을 터이니, 대체 달콤한 잠의 나라는 어디 있다는 걸까.

 

내가 아는 많은 사람들은 잠을 제대로 못 자거나 안 잔다. 방에서 잠들지 못하고 거실에서 자는 사람도 많다. 아이가 수면장애가 있어서 제대로 못 자니 덩달아 엄마도 못 잔다. 아이가 문득 현관문을 열고 나가버리는 적도 있으니 현관에 이중자물쇠를 해놓고도 인기척이 날 때마다 화들짝 놀라 깬다. 깊이 잠들어 렘수면 상태가 되면 쉽게 각성되지 않을 테니 의식적으로 깊은 잠에 빠지지 않으려고 기를 쓴다.
 

지금은 문을 걸어 잠그고 자니 밤에 몸서리를 치며 자는지 누에벌레처럼 폭폭 달게 자는지 알 수 없지만, 우리 아들도 어렸을 때 무언가에 놀란 듯 자다말고 방에서 튀어나올 때가 종종 있었다. 처음엔 아이를 붙잡았을 때 어딘가 까마득히 낯선 다른 세상을 쳐다보는 듯한 그 얼굴을 보고 무서워서 다리가 후들거렸다. 몇 번 거듭하면서는 마음을 금세 진정시키는 요령을 찾았다. 깜짝 놀라 깨어나더라도 마치 얕은 잠에서 깨어난 듯 순식간에 각성할 것, 얼굴을 마주하지 말고 그저 안아주기만 할 것. 그리고 그 밤은 잠을 포기하고 그저 졸기만 할 것.

 

자다 뛰어나오는 일이 없어진 다음에도 아들의 잠은 달지 않고 거친 날이 많았던 듯 했다. 아침에 벗어놓은 옷을 보면 잡아당겨서 목과 소매가 늘어나거나 아코디언처럼 주름이 잔뜩 잡혀있기도 했다. 지금은 옷을 잡아늘이고 잠을 자는 것 같지는 않으니 아들 방에서 나는 기척에 귀를 세우고 밤잠을 설치지 않아도 된다마는, 아들의 잠을 괴롭히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내내 궁금하다.

 

 

오로라를 보러 캐나다 옐로나이프에 간 적이 있다. 우주라는 영혼의 옷자락, 오로라는 내 버킷리스트 1번이었으니 기회가 되자 만사 제쳐두고 갔었다. 오로라를 보며 살던 북아메리카 원주민들은 영혼의 날개를 밟고서 살았을 거라고 느꼈다. 거기서 참으로 반가운 물건을 만났다. 드림캐처, 나쁜 꿈을 걸러내는 부적같은 물건이라 했다. 머리 맡에 놓고 자면 밤잠을 잘 자게 해준다던 그 물건을 보자마자 우리 식구들은 저마다 두어 개씩 집어들었다. 이건 엄마에게 꼭 필요해, 하면서.

 

식구들의 애정어린 기대에도 불구하고, 인디언의 영험한 기운이 깃든 드림캐처를 온 방 가득 주렁주렁 걸어두어도 나의 잠은 그리 푸근하지 않다. 그저 잠이 들어버린 시간은 여전히 마음을 불편하게 한다. 그 시간에 했어야 하는 어떤 일들이 있었던 것 같고, 그 시간에 깨어서 생각해야 할 어떤 것들이 있는 것 같다. 제대로 말하자면, 그 시간에 지켜야 할 어떤 삶이 있어서다. 그 삶이 놓일 자리가 마련되지 않았으니 나의 잠은 여전히 성글고 거칠다. 그러니 드림캐처는 임무를 다하지 못해 딱한 처지이다.
 

그뿐이랴, 문득 잠들었다 퍼뜩 깨어보면, 잠들지 않고 바라보아야 했던 별과 달이 있었던 것 같고, 허연 구름이 밤하늘을 스쳐 지나갔던 것 같고, 그 아래를 비행기가 날아갔던 것 같다. 기온이 떨어지는 밤마다 초록이 빠지고 단풍물이 들고 있었던 것 같고, 어떤 새는 까만 밤을 홀로 날았던 것 같다. 그 새가 내 방의 창문을 흘깃 보았었을 것 같고, 마른 번개가 쳤을 것도 같다. 오로라가 일렁이는 밤하늘을 북극여우가 한참을 쳐다보았을 것이다.

 

나는 자느라 놓친 그것들을 애석해 마지않으며 밤마다 떠나지 않았던 세상으로 돌아오고, 친정 엄마는 새벽도 되기 전에 지겹게 잠이 깨어서는 빈방에 홀로 앉아 있을 것이니, 모녀의 가을밤은 이래저래 깊어간다.

김종옥

전국장애인부모연대 문화예술특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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