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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새벽까페 23_김종옥] 거울을 들여다 보며-2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4-08-05 조회수221

 

1. 아스퍼거라고요?

 

발달장애 중에서 자폐는 자폐스펙트럼장애라 한다대체로 자폐라는 범주에 묶는 게 가능하긴 하지만그 안에 워낙 다양한 양상이 있다영화 레인맨으로 알려진 서번트가 있는가 하면 아스퍼거도 있었다’. 왜 있었다라고 썼느냐면 이제는 더 이상 아스퍼거라는 이름으로 부르지 않기 때문이다지금은 고기능자폐라고들 하지만뭐 이것도 썩 좋은 명명은 아닌 것 같다.

 

아스퍼거라는 이름을 쓰지 않게 된 데는 극적인 배경이 있다. <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 >(존 돈반캐런 저커 지음라는 책은 미국의 자폐 운동을 정리한 책이다자폐와 관련된 사건과 인물들의 이야기를 매우 상세하게 기록해 놓은 두툼한 분량의 책인데여기에 아스퍼거에 관한 사연이 실려있다이것을 읽은 다음부터는 절대 아스퍼거라는 단어를 쓰지 않겠다고 마음 먹었다지금도 아스퍼거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당사자 또는 가족들은 흔히 자폐를 가졌어요라고 말하는 것보다는 아스퍼거에요라고 말하는 것 같다대체로 자폐 중에서도 구분되는 특징들을 가졌으니 그렇게 말하는 것이 정확한 소개라고 여길 수 있다그러나 나는 그게 좀 불편하다자신을또는 자녀를 소개하면서 1급이에요, 2급이에요 라고 소개하는 것이 불편한 것처럼.

 

아스퍼거라는 범주를 만들어낸 작업자의 과정과 의도그리고 그 행적을 생각한다면 더 이상 아스퍼거라는 단어를 쓰지 말아야 한다우리도 통용하는 미국정신의학협회의 DSM(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서도 2013년부터는 진단분류표(DSM-5)에서 아스퍼거 장애라는 진단명을 삭제하면서 아스퍼거를 포함해서 모든 자폐적인 행동 조합은 자폐스펙트럼 장애라는 진단명으로 통합했다.

 

아스퍼거가 특별하게 주목받았던 이름에서 더 이상 쓰지 않게 된 이름이 된 데는 다음과 같은 극적인 사연이 있다이제부터는 대체로 <자폐의 거의 모든 역사>에 소개되어 있는 것을 정리한 것이다.

 

2. 한스 아스퍼거

 

아스퍼거는 아스퍼거 유형의 자폐를 갖고 있던 사람의 이름이 아니라 그 분류를 만들었던 의사의 이름한스 아스퍼거에서 왔다.

 

한스 아스퍼거(1906-1980)는 오스트리아에서 소아과 의사가 된 후 1932년부터 비엔나 대학병원에서 정신 및 인격장애를 치료하는 프로그램을 이끌었다. 1939년에 오스트리아가 제3제국에 합병되어 나치 치하에 들어갔을 때나치는 장애를 가진 유아어린이청소년을 죽여야 한다는 캠페인을 벌였다물론 강하고 우수한 인종만을 남겨야 한다는 우생학적 폭력이었다이 때 장애’ 속에는 신체질환은 물론 정신질환도 포함되었다.

이 캠페인이 안락사 프로그램’, T4계획이었다그 계획에서는 장애 자체의 이유로 죽어야 한다는 게 아니라비용편익분석을 했을 때 살려둘만한 가치가 있는지 아닌지로 삶과 죽음을 판단했다장애아이 하나를 구제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이 장애가 없는 아이를 교육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보다 많다면세계를 위해 장애는 안락사하여 없애는 게 낫다는 얘기다의료인들은 아이를 앞에 놓고 치료와 교육으로 구제될 수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 판단해야만 했다구제될 수 없다면 무가치한’ 것이고그렇게 판단되면 안락사라는 이름으로 죽였다.

이런 집단살인이 진행될 무렵 한스 아스퍼거는 자신이 자폐성 정신병자라고 불렀던 일단의 무리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 발표하면서조현병과는 다른 이 소년들을 자폐증적이라고 표현했다그는 1944년 박사학위 논문에서 비슷한 성향을 보이는 소년 200명을 관찰한 연구를 발표했는데그 성향은 이렇게 표현되었다. ‘대부분 다른 사람특히 성인과 교류하기 위해 몹시 애를 쓰지만 관계는 불안으로 가득 차있으며따뜻함과 이해를 허용하지 않는 독특하고 까다로운 성격 때문에 관계맺기에 어려움을 겪는 것 같았다. ... 대부분 극히 장황하게 말하며또래 아이들보다 훨씬 성인에 가까운 말투를 구사했다또한 철로의 배열 등 어느 누구도 관심이 없는 한두 가지 주제에 푹 빠져 집착하는 경향이 있었다억양 없는 말투로 거의 자동적으로 그 주제에 대한 말만 끝없이 늘어놓으며 주위 사람을 지루하거나 짜증나게 한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어휘에 대한 타고난 재능이 오히려 사회적 관계에 걸림돌이 되었던 것이다....’

그는 자신이 발견하고 규정한 이 소년들이 정신적 장애를 지닌 것도 아니며, ‘남다른 사고의 독창성과 행동의 자발성을 지닌 매우 지적인 어린이들이었다고 주장했다.

 

아스퍼거는 전쟁 시기는 물론 전쟁 이후에도 의사와 연구자로서 성공한 삶을 살았고대학교수를 거쳐 1963년에는 비엔나 대학 어린이병원장을 지냈다가 1980년 74세로 숨을 거두었다.

 

3. 나치와 아스퍼거

 

아스퍼거가 알려진 것은 1980년에서 1990년대 사이에 자폐스펙트럼이란 개념을 도입하고 알렸던 로나 윙이라는 미국인 학자이다윙은 아스퍼거의 1944년 논문을 발견하고는마침 자신이 해오던 연구와 비교하여 같은 집단의 어린이에 대한 연구임을 확신하고 스스로 그 집단에 대해 아스퍼거 증후군이라는 용어를 쓰자고 주장했다별도로 부르고자 했던 이유는 자신이 제시한 스펙트럼이란 개념을 강화하려는 의도에서였다고 한다말하자면 증상이 가벼워 자폐증이라는 진단을 믿지 못하는’ 이들에게 이 진단명이 자폐스펙트럼을 받아들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1980년대 이후 이 진단명은 이미 널리 사용되었고, 1992년 세계보건기구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국제질병분류 체계에 등재했다미국정신의학협회는 1994년에 아스퍼거 장애를 DSM(미국 정신의학회의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 넣었다.

 

이렇게 아스퍼거는 그 연구의 업적과 권위를 인정받는 이름이 되었다그런데 2010년 5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열린 한스 아스퍼거 기념 심포지엄에서 극적인 사건이 일어났다이 심포지엄 자리에는 위에서 언급한 로나 윙을 포함해 자폐 연구의 이른바 권위자들이 한스 아스퍼거의 연구와 업적을 기리기 위해 모였고특별히 아스퍼거의 딸과 손주들도 자리했다.

 

이 자리에서 헤르비히 크체히라(헤르비그 체흐)는 젊은 의료사학자가 충격적인 고발을했다그는 한스 아스퍼거 박사와 비엔나에서 나치의 어린이 안락사 프로그램-잠재적 관련성이라는 제목으로 강연을 하면서한스 아스퍼거가 나치에게 협조한 구체적 증명들을 폭로했다수많은 어린이가 죽어갔던 슈피겔그룬트로 아이를 보내라는 평가서 문서에 한스 아스퍼거의 서명이 있었으며한 정신병원의 어린이 210명의 건강상태를 검토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그 중 일부는 격리해야 한다는 평가서를 작성하기도 했다. ‘히틀러 만세라고 적은 편지도자필로 자신이 나치의사엽합 후보자라고 소개한 구직신청서도 나왔다.

 

이 심포지엄 자리에 있었던 사람들의 충격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그들이 대단한 연구자라고 기리던그래서 자폐증 분류에서 특별한 이름까지 부여했던 한스 아스퍼거가사실은 자신의 연구를 갖고서 나치의 학살에 부역했던 인물이었다는 것이 그의 딸과 손주가 있는 자리에서 폭로가 된 것이다게다가 한스 아스퍼거는 생전에 자신은 나치에 부역한 사실이 없다고 말했었다.

 

이 사건이 있은 뒤 2013년 아스퍼거 장애라는 진단명은 DSM-5에서 삭제되고아스퍼거는 자폐스펙트럼 장애라는 진단명으로 통합되었다.

 

4. 다른 게 뭐라고

 

이 사연을 알고서도 아스퍼거라는 단어를 쓸 수는 없다이는 단순히 분류체계의 명칭 변경에 얽힌 에피소드가 아니다사람을 나누고 가르는 일은 그 의도에 따라 폭력이 되기 쉬우며무의미하고 무가치하고 무례한 이 된다는 증거이다아스퍼거가 살려둘 가치가 있는 아이들과 그럴 가치가 없는 아이들을 구분하면서그가 발견한 독특한 소년들은 어떤 분류에 넣었을지 짐작하는 것도 끔찍한 일이다.

 

사람은 저마다 다르다저마다 한 세상이고 저마다 한 세계이고 저마다 하나의 우주이니얼마나 다른가비슷한 사람이 내 옆에 있다한들그와 나는 다른 스토리를 엮어가는 다른 세계 사람이다그 차이와무슨무슨 장애인무슨무슨 소수자로 분류되는 그 차이는 어느 것이 더 큰가어느 것이 의미 있는 차이인가.

우리가 보는 거울에는 그저 나와 타인나와 내가 보는 사람그것만 있을 뿐이다다르다고다 다르고다 비슷한데그래서 뭐가 대수라고~?! (2024. 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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