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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칼럼

[왁자지껄 가족 23_조미영]숨바꼭질 이제 그만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2-05-31 조회수877

 

어머니, 하진씨 오늘 결석하나요? 평소 940분 전후에 들어오는데 아직 안 왔어요.”
 

 

 

101분을 지나고 있었다. 나는 아침 일찍 여의도에 일이 있어 나왔고 남편이 데려다 주기로 했는데 무슨 일인가 싶었다. 심각한줄 모르는 남편이 전화를 받으며 장난스럽게 왜 그려?’하는 말투에 아들이 센터에 갔다는 확신이 섰다.
 

 

 

하진이 몇 시에 데려다 줬어? 아직 안 왔다고 연락 왔는데...”
 

 

 

“9시 반에 1층에 내려주고 건물 안으로 드가는 거 보고 나는 천안 가는 길인데?”
 

 

 

선생님께 전화해서 1층 로비에 가봐 달랬더니 바로 전화가 왔다.
 

 

 

어머니, 1층에 계셔서 같이 올라왔어요. 밖으로 안 나가서 정말 다행이에요.”
 

 

아들은 30여분 동안 왔다 갔다 하면서 뛰기도 하고 에어컨 아래서 바람 쐬며 서 있기도 하고 그랬단다.

 

 

가족대화방에서 오늘의 작은 해프닝에 대해 말했다. 나는 1층 안내대에 직원이 있는데 오랜 시간 혼자 있는 청년에게 왜 말 한마디 안 붙였을까 그것이 아쉽다고 했다.

 

 

다른 사람들이 눈에 멀쩡해 보였나 보지 뭐. 소리라도 지르고 뭔가 이상한 행동 했으면 누구라도 도움 주려고 하지 않았을까? 누굴 기다리나 보다 하고 그냥 보고만 있었나 보네. 우리 동생 멋지다!”
 

 

평소 동생 행동에 대해 냉정한 딸의 반응에 나는 기분이 좋았다.

추측컨대 혼자 로비에서 뛰어다니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여기가 어디? 계단이 안보이네하면서 한쪽 귀퉁이에 서서 누군가 오길 기다린 것 같다.

양쪽 출입문은 보이지만 계단실은 조금 안쪽으로 들어간 구조라 방향 감각을 잃고 멍한 상태이지 않았을까 싶다.

 

 

3년 전 다른 센터에 다닐 때 외부로 나가서 식겁한 적이 있었다. 건물 입구에 내려 주고 차를 돌려 집으로 가는 도중 신호 대기 중이었는데 반대편 도로변에서 낯익은 청년의 실루엣이 보였다. 두 팔을 들고 흔들며 제자리 뛰기를 열심히 하는 모습이 예사롭지 않았다. 작은 눈이 저절로 커지며 다시 보니 아들이었다. 조금 더 내려가 유턴을 하고 올라 올 때까지 자신의 행동에 심취해 엄마 차가 옆에 서도 아랑 곳 하지 않았다. 창문을 내려서 아들을 불렀다. 화들짝 놀라며 아니, 엄마 가는 걸 분명히 봤는데!’하는 표정이 내가 아들을 발견했을 때와 완전 똑같았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더 있다 갈 거야? 그럼 지각인데 그만 들어가지!”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아들은 센터를 향해 줄행랑치기 시작했다. 내가 보지 못했다면 아들은 어디까지 갔을까 생각하니 아찔했다.

그 후로도 몇 번 건물 주위를 배회하다가 내부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였지만 가슴 쓸어내리는 일까지는 가지 않았다.

 

코로나로 센터를 띄엄띄엄 다니다가 올해 주5일 다니게 되었다. 3년여 동안 아들은 한 번도 주저하지 않고 지하 주차장에 내려 바로 계단으로 4층까지 혼자 올라갔다. 딱 한 번 엘리베이터를 타고 5층에 내려 서성대는 걸 지나던 선생님이 4층으로 보내 준 적이 있었다.

그러니까 이번 해프닝은 근 4년 만에 생긴 일이었다. 평소 엄마가 내려 주는 곳은 지하 주차장인데 아빠가 내려 준 1층 로비는 볼 것이 많았나 보다. 카페, 테라스, 휴게실, 물품판매대 등 볼거리가 제법 많으니 아들은 일탈을 꿈꿨던 걸까? 30여분 동안 아들은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신났을까?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디로 갈지 몰라 불안했을까?

많은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지만 아들 마음을 정확하게 읽을 순 없다. 이런저런 추측을 하다 보니 건물 밖으로 나기지 않은 건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몇 해 전 아들과 잠실 전철역에서 지나가는 할머니 짐을 들어 주느라 앞서가던 아들을 놓쳐 2시간 넘게 헤맨 일이 떠올랐다. 지하상가에서 아들 혼자 서성대니까 상점 주인이 관리실에 연락하여 경비아저씨가 노숙자인 줄 알고 외부로 쫓아냈던 일, 아들이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밖으로 나가 어두운 잠실 사거리를 헤매다 경찰들이 발견했던 그 악몽 같았던 날. 나중에 아들이 남들 눈에 노숙인과 장애인 중 어떻게 보인 게 더 나은 걸까 농담하며 웃었던 그 날.
 

 

한강 둔치에서 신나는 음악을 들으며 몸을 흔들다가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데 그걸 모르고 엉뚱한 곳에서 찾아 헤맸던 일도 있었다.

크고 작은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이제는 아들과의 숨바꼭질은 더 이상 하지 않아도 되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멀리 가지 않고 주위에 머물러 준다는 게 얼마나 다행스런 일인지 감사함마저 들었다. 아들도 밖으로 나가봤자 엄마 만나는 일이 길어만 지고 불안한 마음이 생겼을 지도 모를 일이다.

 

누구의 간섭과 통제 없이 혼자 세상을 돌아본다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인지 아들이 겁먹지 않고 알아 가면 좋겠다. 함께 살면서 따로 사는 즐거움이 있는 평범한 일상이 아들의 미래이길 바란다.
 

 

아들아, 네가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살아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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