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과의 만남
“그래, 네가 날고 싶은 곳 잘 갈 수 있게 엄마가 최선을 다할게.”
먹던 밥을 오물거리며 ‘내게 저런 아이가 오면 난 잘 키울 수 있을 거야.’라고 중얼거렸다.
특별한 아이를 보낼 때 신들이 모여 회의를 한다고 들었다. 그 신들은 겨우 중학생 아이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독백을 잊지 않았다.
결혼하면 그만둔다던 직장을 아이 낳을 때까지로 미뤘다. 첫아이를 친정 엄마에게 맡기고, 둘째 생기면 전업주부가 되려고 했다. 하지만 6년 터울의 아들이 내게 왔을 때도 나는 직장을 놓지 못했다. 제법 높은 연봉을 포기하고 남편의 월급만으로 서울에서 사는 건 빠듯했다. 두 아이를 키우며 나는 직장 생활을 이어 갔다. 첫 아이를 친정 엄마가 키웠기에 둘째인 아들이 내게는 첫 육아 경험이었다. 서툰 엄마로 10개월을 보내고 복직을 했다. 딸은 어린이집에, 아들은 이웃 할머니에게 맡기면서 힘겨운 날들이 이어졌다. 저녁 6시가 되면 아들이 엉금엉금 기어 현관 앞으로 간다는 할머니 말에 제법 똘똘한 아이라 생각했다. 벌써 엄마 퇴근 시간을 감지하다니….
어느 날 일찍 퇴근해서 갔더니 할머니는 화장실 청소 중이었고 아들은 TV 화면을 손으로 닦고 있었다. 저 전자파를 어쩌나 싶어 찜찜한 마음이 들었지만 내색은 하지 못했다. 마침 자영업 하던 동생이 잠시 쉬는 사이 나를 도와주러 서울로 왔다. 한결 수월해진 일상 속에서 아들은 설거지하는 내게 포대기를 가져와 ‘어부바’를 말하며 엄마에게 치근대는 일이 잦았다. 출근하는 내 옷을 붙잡고 못 가게 하는 날도 있었고 심지어 울기까지 했다. 나는 아들이 방에서 노는 사이 몰래 집을 빠져나오며 우는 아이를 외면했다.
“언니야, 아침에 언니 출근하고 하진이가 안 보여서 찾았는데 베란다에 쪼그리고 앉아서 울고 있더라.”
동생의 말에 심장이 내려앉았지만, 며칠 고민만 하다가 명퇴 기회라도 잡고 싶어 계속 다녔다. 동생이 아들을 데리고 친정에 가서 본인 일을 알아보던 한 달여간, 아들 없는 일상은 평화로웠다. 보고 싶은 마음보다 편안함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다가 동생이 새 일을 시작하면서 아들만 내게 왔다. 부산에서의 그 한 달 동안 아들을 유심히 관찰했던 형부가 내게 말했다.
“느그 아들 좀 이상하다. 불러도 대답을 안 해서 못 듣나 싶었는데 TV 광고 소리 나면 쏜살같이 와서 보더라. 눈맞춤도 잘 안되고….”
사내아이라 유별난 거랑은 다르니 병원을 가 보라고 했다. 걱정스런 마음으로 아들을 유심히 보니 돌 무렵에 했던 행동을 하지 않았다. ‘엄마가 좋아, 아빠가 좋아?’ 물으면 내게 뛰어와서 안기던 아들은 사라졌고 잘 울고 떼쓰기가 늘었다는 걸 형부 말을 듣고서야 알았다.
간호사 친구가 특수교사인 지인을 우리 집에 보냈다. 둘이 얘기하는 동안 혼자 노는 아들의 움직임을 살피더니,
“자폐라고 하기엔 성급하고요, 자폐 성향이 있어 보이네요. 이제 17개월 된 아이라 병원에서도 쉽게 진단은 못할 겁니다.”
바로 퇴직을 했고 아들과 함께 병원 쇼핑이 시작되었다. 지인에게 소개받은 병원에서 그럴듯한 말을 들었다.
“자폐인지 지적장애인지 정확하게 알아야 교육 방향이 정해져요.”
그랬다. 두통인데 지사제를 먹으면 안 되는 거였다. 하지만 발달장애로 묶인 자폐성장애와 지적장애를 구분하기는 쉽지 않았다. 많은 아이들이 자폐와 지적장애를 동시에 갖고 있었다. 자폐 성향으로 인해 지적장애를 동반하는 경우를 지적장애로 진단하는 것을 아들이 성인 되고서야 알았다. 교육 방향이 다르다고 말한 의사 말처럼 다르게 교육하는 기관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남들 하는 것을 따라 하면서 아들을 들볶았다. 아들은 도에 지나친 온갖 치료와 교육으로 학습된 무기력감과 나름의 백일몽으로 견뎌 내고 있었다.
아들이 내 치마폭을 붙들며 함께 있어 달라는 신호를 보냈을 때 직장을 그만두고 아들 곁에 있었다면 어땠을까? 전혀 연관성이 없다는 전문가의 말을 들으면서도 그때 그랬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꽤 오래 지속되었다. TV 보며 했던 중학생 철부지의 독백도 주워 담고 싶었다.
지난한 과거를 뒤적이며 아들과의 혹독했던 동거를 떠올리려 한다. 과도한 치료와 교육으로 아들을 더 힘들게 했던 후회와 반성보다는 지금 행복하기에 집중한다. 밝은 표정의 아들을 보면 이렇게 살다 가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지만, 목표는 ‘따로 또 같이’ 사는 것이다.
11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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