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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공모전 수상작

제7회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단체장상_청소년부_경기 성복중 김제은
글쓴이관리자 게시일2023-11-01 조회수194

제7회 장애인식개선 콘텐츠 공모전 단체장상_청소년부_경기 성복중 김제은






정상성과 비정상성을 넘어

 

  나의 학교생활 중 잠깐 순간의 반 친구들이 ‘장애’라는 것을 희화화하는 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나의 모습을 반성한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장애’는 누군가를 깎아내리거나 그저 놀림의 수단으로 이용당하는 현실에 참 안타까울 따름이다. 한 때 이러한 불편한 감정을 친구들에게 말하곤 했는데, 친구들도 모두 나의 생각에 동의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돌이켜보면 그 친구들도 ‘장애’ 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지금에서야 알게 되었다. 이렇게 내가 직접적으로 비도덕적인 행동을 하는 것에 대한 생각을 말하면 대부분 그 사실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장애에 대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에 대한 불편함의 기색을 나는 뚜렷이 느끼고 있다. 모순적이게도, 나 역시 지금보다 더 어릴 적엔 장애를 가진 친구들을 피하곤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이 말은 확연히 사실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나에게 생긴 궁금증은, 왜 예전의 나를 비롯한 사람들은 ’장애‘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뇌리에 있다는 것인가이다.

 

지나친 동정의 눈과 편견

내가 모든 이들의 생각을 전부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작게나마 추측해보려 한다. 우선 예전의 나를 이해해보려 예전의 나의 생각들에서 ‘장애’와 관련된 연결고리들을 찾아보았다. 나는 장애인에 대해 떠오르는 단어들을 나열해보았다. 몸의 이상이 있는 사람, 보호를 받아야 하는 사람, 운이 없어 생을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 등이 있던 것 같다. 지금에서야 생각하니 장애인은 사회적약자라는 생각이 강하게 뇌리에 박혀있던 것 같다. 내가 장애인들을 과하게 동정의 눈으로 보고 있던 것 또한 있었다. 왜 이러한 생각들을 하게 된 것일까? 지금의 나는 이 이유가 어느 순간 갑자기 들게 되거나 특정한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보는 인터넷 뉴스와 텔레비전에 장애에 관한 내용이 나오면 모두 장애를 가슴 아픈 일로, 그리고 장애를 이겨내고 사람의 사연을 볼 수 있었다. 그렇게 나의 뇌에 계속해서 “장애는 가지고 있는 사실만으로도 안타까운 일이다.” 그리고 “장애를 이겨내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라고 그저 이런 생각들을 심어주고 그 생각이 자라나며 이것은 보편적인 사실로 인식되게 한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생각해보면 장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무조건 힘들고 고뇐 일을 감당해야 하는 사람들인가? 라는 질문이 따라온다. 장애는 그저, 비장애인들이 태어날 때 가지는 유전병 또는 살면서 겪을 수 있는 병의 한 종류라는 정도일 뿐이다. 장애를 가진다는 이유로 무조건 그들이 비장애인들과 다르게 힘든 삶을 사는 것도, 보호를 받아야만 되는 사람도 아니다. 내가 이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나는 장애에 대한 편견에 급속도로 금이 가기 시작했다. 사람들도, 나처럼 ‘장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깊게 고찰한다면, ‘장애’에 대한 고정관념들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잉크처럼 번지는 불편함

  내가 앞에서 말한 장애에 대한 편견들이 깨지는 동안 우리가 더 깊게 생각해봐야 하는 숙제가 있다. 과연 자신이 지금까지 장애에 대한 편견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게 된 이후에도 실제 장애인들을 대할 때 가지고 있던 모든 편견들을 단번에 버리고 대할 수 있을까? 씁쓸하게도, 장애 인식 개선의 첫 번째 단계를 밟고도 자신의 생각에 머뭇거리는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나는 첫 번째 단계를 밟고 내가 ‘장애’에 대한 개선되어진 생각을 가진 것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비교적 최근까지 사람들이 ‘장애’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개선되는 중에 ‘장애’를 이용한 비도덕적인 발언을 하는 이들에게 자신의 생각을 적극적으로 말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 해결책을 한 책에서 얻게 되었다. 책의 제목은 ‘불편해도 괜찮아’로 김두식 작가의 글이었다. 이 책에서는 인권에 관한 이야기들이 드러나 있으며 장애인들의 인권 이야기 역시 담겨있었다. 나는 그 부분을 주요로 읽어보면서, ‘불편함’에 대한 깊은 생각의 문에 도달했다. 단순히 생각해 보면서, 나와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 불편함을 느낄까 생각해보았다. 바로 다른 누군가가 나를 불편해 할 때, 나를 제외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불편해할 때였다. 전자의 경우는 나의 성격에 해당하지는 않았지만, 후자의 경우는 해당하였다. 그리고 대다수의 사람들은 나를 제외한 사람이 장애인을 불편해할 때 그 상황을 불편해 한다는 것이다. 자신이 아무리 장애에 대한 편견이 깨져있거나, 금이 가는 중이어도 나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 비장애인들에게는 아직 장애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현실이었다. 그래서 장애 인식 개선의 생각이 확산되는 것이 아닌 그저 본인의 의견으로써만 가지고 있을 뿐이다. 이 해답은 정말 단순하지만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장애에 대한 인식을 스스로 생각하며 고뇌하고 자신의 편견을 스스로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빠르고 바쁘게 살아다는 현재 사회에서 되고 있는 현재 사회에서 전까지 가지고 있던 어떠한 편견들을 스스로 돌이켜보는 시간을 가지는 사람들은 드물다. 그렇기에 나와 같이 장애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미리 가지기 시작한 사람들이 장애인식 개선에 도움을 주어야 한다.

 
  나는 모든 사람들이 장애에 대해,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대할 때 배려의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자신이 내밀었던 배려의 손길이 그저 동정으로써의 마음으로 한 것은 아닐까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렇다고 신체적으로 불편함을 겪는 장애인들을 아예 무시하라는 뜻이 아니다. 우리가 준비물을 가져오지 못한 친구에게 쓰다 남은 준비물을 빌려주듯이, 키가 작은 아이에게 목마를 태워 넓은 경치를 보여주듯이, 비장애인들을 대하는 것과 같이 도움을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애인들의 반의어를 물어보면 일반인이라 답하는 경우가 대다수인데, 장애인의 반의어는 비장애인이다. 지금까지 잘못 알고 있었다고 해서 과거의 자신을 반성하고 뉘우치는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그 사람들의 그 작은 생각 하나가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이라 생각한다. 훗날 장애 인식이 개선되어 더 이상 장애에 대해 불편하거나, 동정심을 불러일으키거나 하는 일이 없어진다면, ‘장애 인식 개선’ 이라는 말이 사라지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정상성과 비정상성을 넘어, 모든 사람은 같음과 동시에 다르다. 우리가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했더라면 우리는 동등하다는 이유로 뭉쳐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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